정진호 포스텍 교수
광복절, 일제의 무조건 항복 소식이 우리에게 전해진 8월 15일, 해방의 기쁨이 삼천리를 뒤덮었다. 덩실 덩실 좋구나~ 지화자 좋다~ 온 동네 아낙들이 둥굴레 춤을 추었다.
"조선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그 날의 함성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온 누리에 찾아온 만세의 함성, 그러나 조선과 대한으로 뒤섞인 함성 소리, 그 안에 이미 분단의 그림자가 드려지기 시작했다. 광복, 다시 자유의 빛을 찾았지만 우리는 진정한 해방을 맞지 못했다.
미·소 군정의 분할통치로 찾아온 분단은 결국 내전에서 전쟁으로 이어졌고, 증오의 덫에 사로잡힌 우리는 새로운 영어의 몸이 되었다. 그토록 꿈꾸던 자주독립의 꿈은 저만치 종종걸음을 쳐서 달아났고, 우리는 통일이라는 새로운 숙제, 고통의 굴레에 갇히고 말았다.
1940년 중경에서 임시정부 주석이 된 김구는 광복군을 창설한 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에 있던 이승만을 주미 외교 위원부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그의 외교력으로 광복군을 연합군의 일원으로 편입시키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광복군은 끝내 국내 진공작전을 못한 채 광복을 맞았고, 쇼와 일왕의 항복 선언 소식에 백범 김구는 땅을 치고 통곡했다.
우리는 패전국 일본에 속한 점령지가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전범국가 일본의 4개국 분할통치 대신 우리가 분단의 희생양이 되었다. 승전국 미·소의 군대는 점령군으로 한반도에 들어왔다. 그리고 기나긴 분단과 전쟁과 분열의 세월을 인내와 고통 속에 살아냈다.
광복 80주년 전야제에서 우리는 '대한이 살았다'를 춤추고 노래했다. 그러나 유관순과 안중근이 소리쳤던 만세는 어떤 만세였을까? 3.1 절 민족대표 33인이 만든 독립선언서에는 우리 국호를 여전히 조선으로 표기하고 있다. "오등은 자에 우리 조선의 독립국임과 우리 조선인의 독립인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이 선언서만 보아도 여전히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조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관순을 비롯한 학생들과 민족지사들이 외쳤던 그 함성은 "조선 독립 만세~" 였을 확률이 매우 높다. 대한제국이 잠시 있었지만 대한이라는 국호는 민초들에게 퍼져나가기도 전에 국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상해임시정부의 설립일인 4월 11일 이후였다. 이 국호를 정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토론과 논쟁이 있었고, 조선과 고려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떨어져 나갔다. 상해 임시 정부의 설립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여운형 조차도 대한이라는 국호는 이미 망해버린 나라이니 적절치 않고 고려로 뭉쳐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주류에서 밀려났다.
임시정부의 수립 이후에, 대한의 국호는 일부 독립운동가와 지식층 사이에서, 특히 해외 독립운동 진영 사이에서 점차 자라나고 있었으나, 일제에게 조센징으로 핍박받고 조선총독부의 지배를 받았던 대다수의 백성들은 자신들을 여전히 조선민족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에게 찾아온 해방의 기쁨, 그들이 목터져라 외쳤던 그 함성은 여전히 '조선독립 만세' 였던 것이다. 우리 국호 대한민국이 법적 지위를 갖게 된 것은 3년 후, 단독정부가 수립된 이후였다. 그리고 우리는 유관순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고 배우기 시작했다.
9월 8일 제물포항에 도착한 미군은 그들을 해방군으로 착각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던 인파를 향해 발포하였다. 9월 9일 미군은 조선 총독부 청사에 나부끼던 일장기를 내리고 미국 국기를 게양했다. 청일전쟁 이후 조선의 백성들을 능멸하고 국모를 살해하던 일본군 사령부 용산기지에 미군이 다시 들어섰다. 그 능욕의 장소 용산으로 들어간 대통령은 결국 내란을 일으켰다.
이재명 대통령은 속히 용산에서 나와야 한다. 그리고 80년 냉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탈냉전 선언을 세계만방을 향해 외쳐야 한다. 분단은 모든 분열의 뿌리다. 그가 역사를 바꿀 위인인지 아닌지는 팔천만 온 겨레와 순국선열들이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어떻게 이 비극을 딛고 진정한 해방의 날, 독립의 날, 화해와 통일의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진정한 해방의 축제를 벌일 그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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