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만 보상? 농작물·송이산은 잿더미"…청송 산불 피해 농민들 절규

입력 2025-08-10 17:31:03 수정 2025-08-10 19:39:52

주택만 보상…농작물·산림 피해는 언제?
사과·송이산 잃고 대출만 남은 농민들
대책위, 특별법·중장기 재건 계획 촉구

지난 3월 발생한 대형 산불이 마을 저온창고를 집어 삼켰다. 사진은 안동시 길안면 한 마을 저온창고의 모습. 전종훈 기자
지난 3월 발생한 대형 산불이 마을 저온창고를 집어 삼켰다. 사진은 안동시 길안면 한 마을 저온창고의 모습. 전종훈 기자

지난 3월 경북 북동부권을 휩쓴 대형 산불로 피해를 입은 농민들이 여전히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다. 주택 전소 등에 대해서는 보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피해 농작물에 대해서는 전혀 보상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고통 속의 농민들

지난 8일 청송군 청송읍의 한 농가. 사과와 콩을 재배하던 A씨는 아직도 불탄 창고 앞을 떠나지 못한다. "농사용 비닐 500m짜리 400롤, 비료 280포, 콩 수확물 전부를 넣어뒀는데, 그날 밤 다 타버렸어요." 그는 마치 불길이 다시 눈앞에서 번지는 듯 목소리를 떨었다. "그때 멈춘 농사일이 내 삶도 멈춰버렸다"며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너무 억울하고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B씨는 마을 공동 저온창고에 사과 1천 박스를 보관했지만, 한 알도 남기지 못했다. B씨는 우선 창고라도 다시 지어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역시 녹록지 않다. "저온창고가 환경부 수계지역 자금으로 지어진 시설이라 복구하려면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고 합니다."

산나물·장뇌삼·송이 등 산림 특산물을 재배하던 산주들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피해 보상 기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C씨는 "작년에 큰돈 들여 송이산 두 곳을 샀는데, 올해 첫 수확을 앞두고 불에 다 날렸다"며 "송이산은 일반 산지보다 몇 배 비싼데, 대출금 갚을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답답한 보상책

3월 화재로 인해 경북은 농작물·농업시설 피해 면적은 3천785㏊에 이른다. 7천30농가가 피해를 입었다. 정부는 예산과 기부금·성금 등을 바탕으로 보상에 나서고 있지만 분야가 한정적이다. 우선 주택 전소 등 피해를 입으면 최소 1억원 이상을 지원한다. 폐기물 처리비용은 모두 국가가 지원한다.

하지만 농작물이나 시설이 산불로 인해 피해를 입을 경우 관련 법이 없다는 이유로 보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청송군이 현재 고사된 사과나무를 다시 심을 경우 정부지원금(FTA 자금·50%)에 추가 지원금을 고려하는 정도다. 또한 농기계나 시설에 대해서도 군 조례에 근거해 최대한 지원안을 찾고 있지만 실질적 보상에는 역부족이다.

마을단위 공동 창고의 경우 국비 등을 받은 보조사업인 탓에 지원 주체에 따라 재건축하는 데 복잡한 절차가 따른다. 낙동강 상류인 청송의 경우 환경부의 수계자금으로 창고를 많이 지었다. 소실된 창고를 다시 지으려면 근거 법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

더욱이 사과 재배 규모만 290㏊에 이르는 청송은 사과나무 1천500그루 이상 베어내고 있지만 보상은 사실상 전무하다.

청송군 관계자는 "농작물의 산불 피해에 대한 직접 보상이라는 것이 법에 없어 우리도 안타깝다"며 "관련 특별법이 빨리 제정돼 피해 농민들이 조금이나마 힘을 받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특별법 제정이 관건

안동·의성·청송·영양·영덕 등 5개 지역 피해 주민으로 구성된 경북산불피해주민대책위원회는 ▷산불 피해 보상 특별법 제정 ▷중장기 생계·재건 대책 수립 ▷누락 피해 재조사 ▷책임 규명 및 주민 협의 기반 회복 ▷상시 대응 체계 구축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산불 피해 지원 관련 특별법안은 국회에 5건이 계류돼 있다. 피해 지역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제정 노력을 하고 있지만 오는 10월 31일 활동 기한이 종료되는 탓에 농민들의 마음은 더욱 조급하다.

박주윤 청송 대책위원장은 "9월에는 특별법이 통과돼야 10월부터 연말까지 보상이 가능하다. 피해 주민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지경"이라며 "지역구 국회의원이 아직 한 번도 현장을 찾지 않았다. 여야를 떠나 피해를 입은 우리의 의견을 들어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청송군의회 역시 7일 '영남권 산불 피해 지원 사각지대 해소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공식 발표하고, 정부와 성금배분위원회를 향해 실질적인 보상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경북도의회 산불대책특별위원회도 지난달 16일 국회를 방문해 산불 피해보상과 지원 특별법 제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 3월 발생한 대형 산불로 안동시 길안면 한 마을 창고가 불에 타 내려앉은 모습. 전종훈 기자
지난 3월 발생한 대형 산불로 안동시 길안면 한 마을 창고가 불에 타 내려앉은 모습. 전종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