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다시 보는 그때 그 사건
2016년 서울 오패산 터널 총격사건... 성병대 무기징역
생활고에 과대망상 빠져... "부패경찰 처단" 전쟁 준비했다
무고한 경찰 1명 순직
2016년 10월 19일 서울 강북구 한복판이 피로 물든 날은 평범한 가을 저녁이었다. 저녁 하늘을 가른 건 가을 바람이 아닌 사제총의 폭음과 공포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 경찰관이 이유 없는 증오 속에 목숨을 잃었다.
사건 당일 오후 6시 20분. 강북구 번동의 한 부동산 앞에서 성병대가 검은 헬멧을 쓰고 나타났다. 그는 손에 길이 21.5cm의 흉기와 직접 만든 사제총을 들고 있었다. 목표는 단 한 사람, 이웃 주민 A씨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A씨는 단순한 이웃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를 "경찰 조직의 음모에 희생된 사람"이라 믿었고, A씨를 그 음모의 '비밀경찰'로 여겼다. 오랜 경제적 빈곤과 사회 부적응, 그리고 망상 속에서 쌓여온 증오가 이날 폭발했다.
◇"모든 게 경찰의 음모"... 망상, 범행 씨앗 됐다
범행의 씨앗은 몇 년 전부터 성병대의 마음속에 서서히 자리 잡았다. 2001년부터 여러 차례 성폭력, 폭력, 무고 등의 범죄로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했던 그는 2012년 출소 이후 사회 적응에 번번이 실패했다. 단기 일자리도 오래 버티지 못했고, 증권 투자로 번 돈은 모두 잃었다. 2015년 이후에는 고정 수입이 전혀 없었고, 생활고는 날로 심해졌다.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보증금 일부를 미리 당겨 쓰고, 구청의 긴급 생계비로 한동안 버텼지만, 2016년 여름이 지나자 그마저도 끊겼다.
성병대의 눈에는 자신이 이렇게 된 원인이 과거 자신을 수사했던 경찰의 음모 때문이라는 망상이 뿌리내렸다. 주변 인물들마저 '그들과 한통속'이라는 망상을 키워갔다. 이웃이자 같은 건물에 사는 부동산 주인 A씨는 그의 표적이 됐다. 몇 차례 말다툼을 한 일이 빌미가 됐다. 2016년 5월, 그는 A씨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범행 열흘 전, 그는 SNS에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앞으로 2~3일 안에 경찰과 충돌이 있을 것이다. 부패 경찰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가는 게 내 목적이다.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범행을 결심한 후 성병대는 묵묵히 경찰과의 전쟁을 준비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사제총을 만들기 위한 온갖 도구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총 발사 원리'와 '화약 폭파 원리' 동영상을 찾아 수십 번 반복 재생했다. 목표는 단순히 흉내 내는 장난감이 아니라, 실제 살상력을 가진 무기였다.
그가 만든 총기는 심지에 불을 붙여 발사하는 옛날 화승총 방식이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시험 발사한 결과, 리볼버 권총보다 약간 떨어지는 수준의 위력이 나왔다. 사람 피부와 비슷한 강도를 가진 젤라틴 블록을 34cm나 꿰뚫었고, 사람이 맞으면 치명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는 위력이었다.
성병대는 이렇게 만든 사제총을 무려 17정 준비했다. 여기에 흉기 7자루를 더했다. 흉기는 손잡이를 길게 개조해 창처럼 만들었다. 사제폭탄 두 개도 완성했다. 폭발 시 사방으로 쇠구슬이 튀어나가도록 설계된, 군사용 파편탄에 버금가는 살상 무기였다. 그는 심지어 자전거 가게에서 헬멧을 사서 쓰고, 서바이벌 게임용 방탄조끼 안에 도마를 덧대어 총격에 대비했다.

◇서울 한복판 총격전... 무고한 경찰 1명 순직
2016년 10월 17일 그는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술 한잔 하자'고 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거절이었다. 성병대는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그 순간, 오랫동안 눌러왔던 증오심이 폭발했다.
2016년 10월 19일 저녁, 헬멧과 개조한 방탄조끼를 입은 성병대는 등에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가방 안에는 사제총 17정, 칼 7자루, 폭탄 2개가 들어 있었다. 전자발찌가 부착된 발목에는 바지가 덮여 있었다.
오후 6시 20분쯤 번동의 A씨 사무실 앞. 검은 헬멧과 장갑을 착용한 그는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마침내 A씨가 사무실 문을 나서자 성병대는 사제총을 꺼내 심지에 불을 붙였다. 불씨가 화약으로 옮겨붙자 '탕' 소리가 났지만, 탄환은 빗나갔다. 놀라 도망치는 A씨를 뒤쫓아 둔기로 다섯 차례 내리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A씨가 쓰러졌다. 그는 A씨가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의식을 잃었을 뿐이었다. 이 와중에 발사된 총알 한 발이 길 건너를 걷던 행인 B씨의 복부에 맞았지만 이를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인근 주차장으로 이동해 가위를 꺼냈다. 전자발찌 줄을 잘라낸 뒤 발찌 본체를 버렸다. 그리고 오패산 터널 옆 화단 풀숲 속으로 몸을 숨겼다. 경찰이 추격해 오면 사제총으로 맞설 계획이었다.
불과 10분 뒤, 112 신고를 받고 도착한 순찰차 한 대가 멈췄다. 조수석 문이 열리고 경찰관 C씨가 내렸다. 거리는 불과 5m 남짓. 성병대는 사제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은 C씨의 어깨를 꿰뚫고 폐와 대동맥을 찢었다. C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다른 경찰관이 무기를 든 채 대응했지만 성병대는 총을 계속 발사하며 10여 분간 대치했다. 경찰은 추가 인력을 투입해 그를 제압했다.

◇반성은 없었다... "경찰이 다 조작한 것"
사건 일주일 후, 현장 검증에서 성병대는 "이건 혁명"이라며 반성 없는 발언을 수차례 반복했다. "순직한 경찰은 독살 당했다" "경찰 때문에 가족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덧붙였다. 그는 대검찰청의 심리검사 제안도 거부했다. "문제가 있다고 나오면 내가 한 말이 다 거짓이 된다"는 이유였다. 전문가 자문 결과, 그는 일부 망상이 있지만 판단 능력은 온전했고, 범행을 계획·실행할 고도의 사고 능력을 갖춘 상태였다.
검찰은 성병대를 살인·살인미수 등 6개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성병대는 뜻밖에도 국민참여재판을 요청했다. 일반 국민 배심원의 판단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재판정에서도 반성의 기미 없이 오히려 당당했고,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피해 경찰관은 동료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죽었다. 세 발 중 두 발이 내 몸에 맞았고, 나머지 한 발이 피해자에게 간 것이다. 내 총에 맞고 사람이 죽을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혹시라도 배심원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 검사는 피해자의 엑스레이 사진을 증거로 제시했다. 사진 속에는 오른쪽 가슴에 박힌 쇠구슬이 선명했다. 사제총에 맞았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그러나 성병대는 "경찰이 조작한 것"이라며 탄환을 바꿔치기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후진술에서도 그는 "증인들은 나를 피해망상으로 몰려고 사전에 교육받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성병대는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돼야 한다"고 밝혔다. 성병대는 항소했지만 2심과 대법원에서도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성병대는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됐다. 그의 방 안에서 시작된 망상과 분노는, 총성과 경찰관의 희생으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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