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는 희망고문?…과도한 기대·착시 경계해야!
'北상대는 美' 재확인...트럼프-김정은 소통채널 재가동할지 주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연이틀 담화를 발표했다. 지난달 28일에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54일 만에 처음으로 '한국과 마주앉을 일 없다"는 대남 메시지를 내놓았고, 이튿날에는 비핵화 협상은 불가능하다는 대미 메시지를 공개했다.
북한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한미 양국은 김여정의 담화 내용을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향후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급변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과도한 기대와 착시를 경계하면서 북한의 의도를 간파하는 전략적 행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 김여정의 담화, 그 출발은 '하노이 노딜' 충격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진행된 2차 미북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해체를 고리로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를 끌어내는 과감한 딜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영변 이외의 5곳'의 핵시설 리스트를 제시하며 "모두 해체하라"고 압박했다. 그러고는 김정은을 향해 "협상을 할 준비가 안됐다"고 선언한 뒤 일방적으로 협상을 결렬시켰다.
이른바 '하노이 노딜'은 김정은에게 큰 충격을 줬다. '브로맨스' 관계까지 과시했던 트럼프를 믿고 '최고지도자'가 전용열차까지 타고 베트남에 왔는데, 보기 좋게 거절당한 것이다. 김정은은 이후 미국과의 담판을 단념하고 핵무력 고도화의 길로 질주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결심은 2021년 1월 열린 북한 노동당 8차 당대회 보고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며 강 대 강, 선 대 선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나아가 "핵 억제력을 보다 강화하면서 최강의 군사력"을 키워내 핵 강압으로 한미동맹에 맞서나가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2022년 9월 북한은 핵무기 선제타격을 가능하게 하는 핵보유국법을 채택했다. 이후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와 함께 미국에 맞서는 '강 대 강 '대결의 길로 나아갔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남북관계에도 미친다. 북한은 2019년 8월1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하늘을 향해 웃는다) 노릇"이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전날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협력을 통한 평화 경제를 건설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 것을 폄하한 것이다. 물론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는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단언했다.
북한은 2023년 12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남북관계를 '공화국 북반부'와 '공화국 남반부'의 관계가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라는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했다. 남북한의 군사분계선도 '국경선'으로 칭했다.
◆ "한국과 마주앉을 일 없다" 단언한 김여정
이런 흐름을 상기하면 김여정 부부장 명의로 나온 지난달 28일 담화에 '조한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제목이 붙은 것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조한관계'는 적대적인 두국가 기조를 담아 '조선과 한국의 관계'를 말한다.
김여정은 "우리는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공식입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힌다"고 했다. 또 "이재명 정부가 수선을 떨어도 조한관계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꾼 역사의 시계를 되돌릴 수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오히려 "한미동맹을 맹신하고 우리와 대결을 기도하는 것은 선임자(윤석열)와 다를 바 없다"면서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한국은 절대로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될 수 없다는 대단히 중대한 역사적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담화에는 역시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김여정은 "우리의 남쪽 국경 너머에서는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의 연속적인 강행으로 초연이 걷힐 날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그동안 이재명 정부에 대해 대통령 당선 사실 등을 간략히 보도한 것 외에는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관심조차 두지 않던 북한이 공식 담화를 발표하자 통일부를 비롯해 정부에서는 기대감을 피력하고 있다.
실제로 담화에는 "대조선확성기방송중단, 삐라살포중지, 개별적 한국인들의 조선관광허용" 등 이재명 정부의 다양한 긴장완화조치들을 열거하면서 '성의 있는 노력'으로 평가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민간의 대북 접촉을 전면 허용하겠다"는 밝히는가 하면 한미 연합훈련 조정 가능성도 꺼냈다.
하지만 김여정의 담화는 전체적인 맥락으로 볼 때 한국정부를 상대할 뜻이 없음을 공개적으로 피력한 것이고, 이는 결국 "우리의 상대는 미국"이라는 메시지로 연결된다.
◆ 비핵화 거부하면서도 '김정은-트럼프 사이 나쁘지 않다' 강조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이 지난달 29일 보도한 담화에서 김여정은 "비핵화를 목표로 한 협상은 미국의 일방적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지금 2025년은 2018년이나 2019년이 아니라는 데 대해서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핵고도화를 통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 북한의 위상변화를 과시한 것이다.
담화는 "전체 조선인민의 총의에 의하여 최고법으로 고착된 우리 국가의 핵보유국지위를 부정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철저히 배격될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자 백악관 당국자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종식시키기 위해 김정은과 소통하는 데 여전히 열려 있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과 북한은 하노이 이후 지금까지 비핵화를 둘러싼 지루한 신경전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김여정은 "나는 우리 국가수반과 현 미국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 물론 "조미 수뇌들 사이의 개인적 관계가 비핵화 실현 목적과 한선상에 놓이게 된다면 그것은 우롱으로밖에 달리 해석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비핵화 협상이 아닌 다른 목적의 대화(핵군축 등)를 제안하는 뉘앙스였다. 특히 '개인적 관계'에 눈길이 쏠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부터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해왔다.
2018년부터 2019년 사이에 27통의 친서를 교환한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해볼 때 다시 한번 '소통 채널'이 가동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실제로 지난 6월 북한전문매체 NK뉴스는 익명의 고위급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 재개를 목표로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낼 친서를 전달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뉴욕에 있는 북한 외교관들이 수령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 北 의도는 결국 "우리 원하는 대로"…. 3대 원칙을 견지해야
연이틀 공개된 김여정의 담화는 쉽게 말해 "우리와 접촉하거나 협상을 하려면 한국이나 미국이나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는 것이다. 이미 핵보유국이 된 만큼 비핵화 협상은 불가능하니, 이른바 '핵군축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고,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거나 축소해달라는 요구가 깔렸다. 그리고 이제 한국과 미국이 앞으로 어떤 대응을 하는지 지켜보고 다음 행보를 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특히 대미 담화에 실린 미국을 향한 북한의 속내가 주목된다. 예측불허의 트럼프에게 2018년과 2019년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했던 것처럼 화려한 '탑다운 담판'을 다시 한 번 하자는 것인데, 과연 트럼프가 어찌 대응할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 시점에서 3대 원칙 또는 시사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존재감을 잃지 않아야 한다. 북한이 이미 핵무기 보유국 반열에 오른 상황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한국을 건너뛰고 미북 핵협상이 진행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한미는 향후 북미대화를 포함한 대북 정책 전반에 관해 긴밀한 소통과 공조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미 양국은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북한이 이미 문을 닫아버린 남북관계의 달라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냉철함이 필요하다. 북한은 이미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전환했다. 이는 미중 패권경쟁 등 세계정세의 변화 속에서 북한의 생존을 위한 정책적 선택의 산물이다.
따라서 과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시절의 정책 기조가 더는 이재명 정부에서는 적용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라는 정책의 목표를 지향하는 것은 선택의 영역이지만 관계 개선을 차단하고 있는 주체는 바로 북한임을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앞에서 살펴본 대로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문재인 정부를 향해 입에 담기 민망할 막말을 퍼부으며 남북관계를 파탄 냈다. 전임 보수 정부를 기점으로 남북관계가 악화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여정이 담화에서 밝혔듯이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한국 정부와의 관계는 자신들이 필요로 하거나, 아니면 한국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 될 때만이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한국의 선의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는 과도한 기대와 착시를 버리고 북한의 의도를 헤아리는 냉철한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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