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초대석-전병서] 한미관세 협상타결, 그 다음 할 일은?

입력 2025-08-04 13:02:11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신(神)은 멀리 있고, 미국은 가까이 있다"는 멕시코인들의 탄식이 한국의 현실로 다가온 듯하다. 한미 관세협정이 우여곡절 끝에 타결되었다. 신 정부 출범 이후 정부 조직이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미국의 일정에 맞춰 협상을 마무리한 것은 정부와 기업의 합심 노력 덕분이다.

유럽,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관세율 협상을 마무리한 점은 선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부대 조건인 투자와 구매 규모를 보면 안도나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협상 결과는 실익 보다는 장기적 부담을 안긴 거래로 보인다.

표면적인 한국의 상호관세율은 15%로 일본, EU와 같은 수준이지만 대미투자와 구매규모를 20년 대미누적흑자규모, 외환보유고, GDP규모와 비교해 보면 한국은 95%, 111%, 24%인 반면 일본은 40%, 42%, 14%에 그치고 있다. GDP 대비 투자와 구매 비율은 일본보다 훨씬 높으며, 한국의 외환보유고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이번 한미 관세협정은 한국이 지난 20년간 대미 무역흑자로 쌓아온 자원을 거의 소진할 만큼의 투자와 구매를 요구하고 있다. 2024년 한국의 대미수출이 1278억 달러에 불과한데 이번 협상의 구매액과 투자액 4500억 달러는 대미수출액의 3.5배나 되는 금액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협상이 아니라, 미국의 '힘의 논리'가 작동한 결과로 보인다. 이는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로 강대국이 약소국을 상대로 일방적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이다. 이번 미국과의 협상에서 보면 고(故) 키신저 박사의 "미국의 적이 되는 것은 위험하지만, 동맹이 되는 것은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이번 협상의 세부 조건은 한국 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구조적인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동맹국들에 과도한 요구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은 대미 무역흑자의 상당 부분을 투자와 구매로 돌려주는 상황에 놓였으며, 이는 단기적인 경제적 손실 뿐 아니라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요구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 3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단순히 수동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전략적 협력의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미국은 AI 기술에서 세계 최강이지만, 제조업 기반은 약화된 상태다. 반면 한국은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이번 협상을 계기로 대미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

첫째, 미국의 AI 기술과 한국의 제조업을 결합한 'AI+' 모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AI는 그 자체로는 돈 만 잡아먹는 '불임 산업'이지만, 제조업과 결합하면 생산성을 25% 이상 끌어올리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미국의 AI 기술 이전과 한국의 제조업 노하우 공유를 맞교환하는 것을 협상 테이블을 제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등 한국의 강점 산업에 미국AI기술을 접목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둘째, 미국은 1년 후 중간선거에서 트럼프가 패배하면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상호 관세의 적법성 여부도 법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불확실성을 고려해 한국은 단기적 양보보다는 장기적 협력 프레임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이번 한미 관세협정은 극적인 합의로 포장되었지만, 실익은 미미하다. 20년간 쌓아온 무역흑자를 단기간에 소진하는 거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국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되 단순히 '기부'로 끝나지 않도록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미국의 AI 기술과 한국의 제조업을 결합한 성공 모델이 없다면, 한국의 대미 투자는 부자 나라 미국에 헌납하는 결과로 끝날 수 있다.

결국 한국은 이번 협상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수동적 동맹이 아닌 능동적 파트너로 거듭나야 한다. 신(神)은 멀리 있지만, 미국과의 협력은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한국의 제조업 강점과 미국의 AI 기술을 융합해 상호 이익을 창출하는 길만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장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기업은 협력의 기술을 다듬고,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