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이행(履行)을 위한 임시 추진 체계를 17일 공식 가동했다. 국회를 통과한 대미투자특별법 시행에 앞서 대통령 훈령을 통해 조선·반도체·에너지·인공지능(AI) 등 핵심 전략 분야 후보 사업을 선별해 속도전을 벌이겠다는 구상이다.
조선 협력 1천500억달러, 반도체·핵심광물·의약품 등 첨단산업 2천억달러로 구성된 이번 행보는 단순한 자본 유출을 넘어 한국 산업 지형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한다. 국제 무역 질서는 투자와 공급망 안정을 맞바꾸는 거대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놓여 있다. 중동 전쟁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에너지 안보의 취약한 민낯이 드러난 현 상황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한다.
문제는 천문학적 투자의 실익 여부다. 정부는 '상업적 합리성'을 원칙으로 내세워 원리금 상환이 가능한 현금 흐름 확보를 강조한다. 하지만 국가 안보 및 공급망 안정을 위해 필요할 경우 상업적 타당성(妥當性)이 부족해도 추진할 수 있다는 특별법 예외 조항을 보면, 상업성과 전략성이 충돌할 경우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 투자 대상으로 거론되는 LNG 인프라나 원전 사업은 에너지 주권 확보라는 명분에도 불구, 막대한 초기 비용과 지정학적 변수로 수익성 장담이 쉽지 않다. 이번 투자가 관세 압박 완화를 위한 일회성 비용으로 쓰이면 기업과 경제가 짊어질 부담은 적지 않다.
투자 일정이 미국 대통령 선거 등 정치 일정과 맞물릴 경우 단기 성과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투자 규모 맞추기에 급급해 산업의 미래를 담보할 내실(內實)을 놓쳐서는 안 된다. 중국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라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 결속이 강화될수록 대중 관계 리스크는 필연적으로 커진다. 승부처는 투자 규모가 아니라 설계의 정교함이다. 상업성과 전략성이 충돌할 때 이를 조정할 엄격한 투명성과 국회의 실질적 감시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3천500억달러는 도약의 발판이 아닌 족쇄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