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원 영양사랑상품권, 아궁이에 불탄 사연… "오지라 괜찮을 줄 알았다"(종합)

입력 2025-07-25 11:40:50 수정 2025-07-25 11:52:21

청송영양축협 직원, 부모집에서 상품권 소각 시도
파쇄기 고장 나서… "나쁜 의도는 없었다" 해명

경북 영양군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발행하고 있는 지역화폐
경북 영양군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발행하고 있는 지역화폐 '영양사랑상품권'의 모습. 매일신문DB

"여긴 산골이라 누가 오겠어요. 그냥 여기서 태우면 될 줄 알았어요."

경북 영양군의 한 외딴 마을. 아궁이 앞에 펼쳐진 수북한 다발들. 언뜻 보기엔 장작이나 짚단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려 수천만원 어치의 지역사랑상품권이었다.

지난 22일 "가정집에서 지역상품권을 태우고 있다"는 한 통의 신고가 영양경찰서에 접수됐다. 경찰과 영양군청 관계자들이 급히 현장을 확인한 결과 아궁이 주변엔 묶인 '영양사랑상품권' 다발이 놓여 있었고, 일부는 이미 그을음 자국을 남긴 채 불에 탄 상태였다.

이 상품권은 2022년에 발행돼 유효기간이 2027년까지로 겉으로 보기엔 아직 유효한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론 모두 사용된 뒤 환전 절차까지 마친 소각 대상 상품권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어디서 어떻게' 처리되려 했는가였다.

조사를 통해 드러난 전말은 이랬다. 청송영양축협은 지역사랑상품권을 일정 기간 수거한 뒤 소각 처리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었는데 영양 지역은 물량이 많아 파쇄기까지 동원해 폐기해왔다. 하지만 반복된 과부하에 기계는 자주 고장 났고, 이로 인해 한 계약직 직원은 급기야 상품권을 자신의 부모 자택으로 들고 가 소각하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지난 24일 해당 직원과 그의 아버지를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직원은 "상품권을 빨리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계는 고장 났고, 부모님 댁이 오지라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나쁜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송영양축협에 따르면 반출된 상품권은 4천286만원으로 파악된다. 비록 이미 현금화된 상품권이라 재사용은 불가능하지만, 외관상 유효기간이 남아 있어 상인들이 잘못 사용할 경우 2차 피해로 이어질 우려도 있었다. 다행히 현재까지는 부정 사용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청송영양축협 측은 "직원의 판단 착오로 발생한 일이지만, 관리 부실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깊이 사과 드린다"며 "만약 부정 사용이 확인될 경우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한편, 지역사랑상품권은 사용 후 반드시 은행에서 지정된 방식으로 회수·소각해야 하며 불법 반출 또는 임의 처리는 명백한 위반이다. 경찰과 영양군은 이번 사건을 통해 축협 내부 관리 체계 전반에 대해 추가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