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
혼자 살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육아, 퀴즈, 요리까지. 온갖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난무하는 시대, 지난해 등장한 듣도보도 못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하나가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제3회 청룡시리즈어워즈 예능·교양부문 최우수작품상 수상, 제60회 백상예술대상 예능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되며 화제성과 작품성 모두를 인정 받은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국내 최초 정치 서바이벌, 이념 서바이벌을 표방한 프로그램이다.
정치 서바이벌, 이념 서바이벌이 뭔지 감이 안온다면? 이 프로그램을 기획·연출한 권성민 피디가 직접 전하는 한 줄 요약 소개는 이렇다.
"좌파, 우파, 페미니스트, 반페미니스트, 집단주의자, 개인주의자, 부유층, 서민, 이민자 등등이 모여서 리더를 뽑으면 누가 리더가 될까?"
정치, 젠더, 계급, 사회윤리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12명의 젊은 남녀가 9일 동안 리더를 선발하고 상금을 분배하는 이 '정치 서바이벌 사회실험'은 그야말로 현실 사회의 축소판 그 자체를 보여준 새로운 개념의 리얼리티로 주목 받았다.
'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는 권 피디가 '더 커뮤니티' 프로그램에 등장한 한국 사회의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담론들에 대해 좀 더 폭넓게 다룬 책이다. 방송을 접했어도, 접하지 않았어도 마치 친한 친구가 옆에서 얘기를 해주는 듯 속도감 있게 잘 읽힌다.
책의 1부 '서로 만나지 않는 세상'은 저자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기까지 품어온 문제의식을 담았다.
그 중심에는 온라인이 있다. SNS에는 단순한 논리로 무장한 극단적인 의견이 두드러진다. 저자는 성별, 연령, 정치 성향에 따라 파편화된 채널을 갖게 된 1인 1미디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대화의 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질문하며, 그 가능성으로 '유희적 공론장'을 주목한다.
하버마스가 공론장의 모델로 제시한 18세기 유럽의 살롱이나 카페가 특정한 목적 없이 문화와 예술에 대해 수다를 떠는 공간이었던 만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그러한 의견 교환과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 질문이 '더 커뮤니티'의 시작이 된 셈이다.

2부 '각자의 입장을 점검하기'부터는 본격적인 얘기가 펼쳐진다. 당시 프로그램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것은 출연자들의 정치 성향을 확인하는 도구인 '사상검증 테스트'였다. (지금도 검색하면 직접 테스트에 참여해볼 수 있다.)
책은 사상검증 테스트를 구성하는 네 가지 차원, ▷정치(좌파와 우파) ▷계급(부유와 서민) ▷젠더(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 ▷개방성(전통과 개방)의 주요 쟁점에 다가선다.
이어 3부 '정답 없이 공존하기'에서는 현대 정치의 가장 뜨거운 쟁점인 정체성 정치, 노동계급의 보수화, 진보 정권에 대한 반감과 불신 등 굵직한 주제들을 다룬다.
책을 읽는 내내, 사회가 마주한 갈등과 반목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통합과 공존을 외치지만 사람들은 점점 서로를 만나지 않고, 이해하려 하지 않으며, 그만큼 혐오의 골은 깊어진다.
'더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은 것은 "서로의 의견이 달라도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연장선에서, 프로그램 출연자들과 시청자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상징적인 장면들을 통해 희망의 가능성을 전한다.
서로를 밀어내야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의 최전선을 마련하는 것, 그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보는 것. 그렇게 서로의 정치적 입장과 삶의 스펙트럼을 넘나드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음을 이 책은 얘기한다. 아 참, 내 스스로 나의 정치적 입장이 어떤 배경과 맥락 속에 형성됐을까, 되돌아보게 되는 점도 의미가 깊다. 356쪽, 1만9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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