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3조 원 수출… K-방산 '전성시대'
속도·파트너십 전략 통했지만, 부품 국산화 한계 뚜렷
수출 2막 위해선 '기술 주권·금융 혁신' 등 뒷받침 절실
세계의 변방이던 대한민국 방위산업(K-방산)이 글로벌 안보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온 지정학적 격변의 파도를 타고, K-방산은 2022년 한 해에만 173억달러(약 23조원)라는 경이적인 수출 실적을 올리며 세계의 '주요 무기 공급국'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압도적 '가심비'와 전쟁을 상정한 '번개 납기', 고객과 운명을 함께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이 빚어낸 쾌거다.
그러나 화려한 영광의 이면, K-방산의 미래를 위협하는 구조적 균열음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금의 열풍이 K-방산이 새로운 왕조의 서막을 여는 신호탄인지, 아니면 찰나의 황금기를 누리다 쓰러질 것인지 가늠할 중대한 기로에 섰다.
◆ '가심비'와 '속도'로 세계를 홀리다
K-방산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격 대비 월등한 만족감'을 의미하는 '가심비(價心比)'가 첫 번째 열쇠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는 독일의 명품 PzH2000과 핵심 성능은 대등하면서도 가격은 3분의 1 수준이다. 포탄을 쏜 뒤 적의 반격이 닿기 전에 신속히 진지를 이탈하는 '슛앤스쿳(Shoot-and-Scoot)' 능력은 현대 포격전의 핵심 생존 비결이며, 2010년 연평도 포격전에서 6분 만에 대응 사격을 완료하며 쌓은 실전 신뢰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산이다.
현대로템의 K2 흑표 전차 역시 70톤(t)에 육박하는 미국 M1A2 전차보다 15t이나 가벼워 한반도와 유럽의 산악 및 연약 지반에서 날렵한 기동성을 자랑한다.
'한국형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LIG넥스원의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천궁-II' 역시 중동의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 대규모로 수출되며, K-방산의 기술력이 지상을 넘어 영공 방어라는 첨단 분야에 이르렀음을 증명했다.
한화의 '천무' 다연장로켓은 미군의 하이마스(HIMARS)보다 2배 많은 12발의 로켓을 탑재, 압도적인 화력 집중 능력을 뽐낸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의 "상상도 못 할 속도"라는 찬사는 K-방산의 또 다른 이름인 '속도'를 증명한다. 이는 서방 국가들이 냉전 종식 후 해체했던 생산라인을 70년 분단의 시간 동안 유지하고 끊임없이 개량해 온 한국만이 가질 수 있는 독보적인 힘이다. 상시 위협에 대비해 온 덕에 숙련된 인력과 항상 따뜻한 생산 기반을 보존할 수 있었고, 이것이 긴급한 수요에 즉각 대응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여기에 단순 판매를 넘어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 수십 년간 이어지는 유지·보수·정비(MRO)까지 약속하는 파트너십은 수입국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단순한 무기 공급자를 넘어, 향후 30~50년을 함께하는 대체 불가능한 '안보 동반자'로 자리매김하는 원대한 전략인 셈이다.

◆해외 의존도가 발목…'기술 식민지' 그림자 여전
하지만 이 눈부신 성공 신화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에 가깝다. K-방산의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핵심 부품의 해외 의존도다.
국방 핵심 소재의 79%를 해외에 의존하며, 전투기 엔진에 들어가는 내열합금과 마그네슘 합금은 100% 수입에 의존한다. 전차의 '눈' 역할을 하는 광학 센서부터 미사일의 '두뇌'인 각종 반도체 칩에 이르기까지, 우리 방산의 명운이 타국의 외교적 변덕에 휘둘릴 수 있다는 의미다. 공급국이 나사 하나만 잠가도 전체 생산 라인이 멈춰 설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독일 정부가 자국산 변속기 수출을 통제하면서 K2 전차의 중동 수출이 좌절된 뼈아픈 기억은 '기술 식민지'의 서러움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전체 수출의 절반 가까이가 폴란드 한 국가에 편중된 '쏠림 현상'은 향후 폴란드의 정권 교체나 EU의 '바이 유러피언(Buy European)' 정책 강화 시 직격탄이 될 수 있다.
AI(인공지능), 항공우주 등 첨단 분야의 석박사급 인재들이 방산보다 빅테크 기업을 선호하는 '인력 미스매치' 현상 심화 역시 미래 성장을 가로막는 시한폭탄이다.
과거에는 '정책금융 한도'가 방산 대형 계약의 발목을 잡았다. 수출입은행법상 특정 국가 대출이 자기자본 40%를 못 넘는 탓에, 폴란드 1차 계약(220억달러, 30조원)으로 한도가 거의 소진됐다. 덕분에 추가 9조원 규모 2차 계약을 두고 한동안 금융 한계 논란이 이어졌다.
하지만 2024년 2월, 국회가 수출입은행 법정 자본금을 25조원으로 높이고, 각종 금융 관련 제도 보완책을 마련하면서 금융 한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됐다. 지금은 방산기금, 시중은행, 민간 금융과 무역보험공사 보증 등 다양한 지원 수단이 동원돼, 폴란드 2차 계약도 정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 4대 과제에 답이 있다
전문가들은 K-방산이 마주한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선 더 이상 지체할 시간 없이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우선 과제는 '기술 주권' 확보다. 내열합금, 마그네슘 합금 등 핵심 소재와 센서, 반도체 칩 등 핵심 부품의 국산화 로드맵을 공격적으로 실행하고, 대기업 중심을 넘어 작지만 민첩한 스타트업들이 혁신 기술을 자유롭게 개발하고 실증하는 역동적인 'K-방산 벤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둘째, 금융 지원 체계의 혁신이다. K-방산이 수십조 원 규모 '빅딜'을 펼침에 따라 앞으로는 단기적인 대출 지원을 넘어서, 수출 초과 달성분을 유연하게 관리하고 신흥시장별 맞춤 금융상품을 적극 개발하는 등 한층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금융 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새로운 기회의 땅을 찾아야 한다. '폴란드 리스크'를 분산시킬 중동·중남미 신시장 개척과 함께, 한번 팔면 수십 년간 수익이 나는 MRO 사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키워내야 한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조선 및 MRO 역량을 활용하려는 미 해군의 최근 관심 표명은 거대 미국 시장 진입의 황금알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이끌어갈 미래 인재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방산 분야 계약학과를 확대하고, 최고의 인재를 유인할 파격적인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등 장기적인 안목의 인재 양성 파이프라인 구축이 절실하다.
장원준 전북대 교수(전 산업연구원 박사)는 "K-방산은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상황으로, 기회를 잘 살려 위기를 최소화해야 한다"며 "K-방산 수출 컨트롤타워 강화, 수출 금융지원 확대 등이 필요하고, 정부와 업체가 원팀으로 총력전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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