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김도훈] 출판기념회와 검은봉투법

입력 2025-07-10 19:43:22

김도훈 여론특집부 차장
김도훈 여론특집부 차장

출판기념회. 저자와 독자가 만나 저작물 출판의 의미를 나누고 축하하는 문화의 장이다. 책의 종류만큼이나 출판기념회의 형태도 가지가지다. 저자가 자축의 뜻으로 지인들을 초대해 조촐한 모임을 갖는 경우도 있고, 지인들이 나서서 지은이의 노고를 위로해 주는 아름다운 풍경도 있다. 일본의 저명한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처럼 출판기념회나 독자와의 만남 자체를 혐오하는 작가도 가끔 있다. 오로지 글로써 독자에게 다가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언제부턴가 출판기념회는 정치판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출판기념회'를 검색하면 뉴스 콘텐츠의 상당수는 정치 기사다. 어느 정치인이 출판기념회를 연다고 하면 후원금이나 참석자만 떠오를 뿐, 정작 책의 내용엔 관심이 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겉으론 책 출간을 알리는 형식을 취하지만 내막은 '사적 후원회'와 비슷하다. 참석자가 책값 명목으로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지불할 수 있어서다. 출판기념회에서 판매되는 책값은 정가보다 저렴하지만 않으면 되기 때문에 정가가 2만원이라면 10만원을 내든, 100만원을 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출금기념회'란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이렇게 거둔 출판기념회의 수입을 신고하거나 공개할 의무는 없다. 연간 한도가 1억5천만원인 정치후원금은 선거관리위원회에 내역을 신고해야 하지만,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경조사로 분류돼 전혀 규제를 받지 않는다.

사용처가 자유롭다는 점에서 후원금과도 성격이 다르다. 과세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현행법상 유일한 규제는 '선거일 90일 전부터 선거 당일까지 출판기념회를 열 수 없다'는 것뿐이다.

향후 개발권이나 사업권을 염두에 두고 전달되는 뇌물일지라도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카드 단말기를 버젓이 의원실에 갖다 놓고 피감기관을 상대로 강매하다시피 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누가 사서 누구에게 건넸는지, 책은 몇 권이나 유통됐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출판기념회 제도 개선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여야 모두가 적극적이지 않았던 탓이다.

김민석 국무총리의 후보자 때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다시금 화두로 떠올랐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3일 "제2의 김민석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며 출판물 판매 수익을 정치자금으로 관리토록 하는 '검은봉투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어 지난달 25일엔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도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실제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출판기념회 수익금을 음성적 정치자금으로 사용하는 관행은 여야를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국민 눈높이'란 표현을 즐겨 쓴다. 그런데 '후원금 모금을 위한 출판기념회'는 국민 눈높이와는 전혀 맞지 않을 듯하다.

국회의원은 급여에 해당하는 세비 1억5천여만원에 후원금을 합치면 1년에 3억원이 넘는 돈을 쓸 수 있다. 선거가 있는 해엔 후원금 1억5천만원이 추가된다. 선거에 드는 돈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대주고, 정당 운영도 나라에서 책임진다. 그런데도 돈이 더 필요하다면 정치 말고 돈 버는 다른 일을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