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의 미래, 한국형 모델 구축이 해답

입력 2025-07-07 16:50:34

국제 분쟁 고조 속 '북극관통항로' 주목
원자력 쇄빙선·자율운항 등 독자 기술 관건

김성범 해양수산부 차관이 24일 정부세종청사 해수부 대회의실에서 북극항로 개척에 필요한 초기 방향 설정과 대외기관 초기 대응을 위한
김성범 해양수산부 차관이 24일 정부세종청사 해수부 대회의실에서 북극항로 개척에 필요한 초기 방향 설정과 대외기관 초기 대응을 위한 '북극항로 TF'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극항로를 선점하려는 국제적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한국이 이 항로를 지속가능하게 활용하기 위해선 독자적 기술 확보와 지정학적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 북극점 중심의 새로운 항로 개발, 원자력 쇄빙선 확보, 자율운항 기술과의 융합 등 한국형 북극항로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종연구원은 지난 2023년 북극항로를 주제로 한 학술지를 발간했다. 세종대는 2019년 세종대 부설 북극연구소를 열고 한국북극연구컨소시엄(KoARC) 회원으로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원자력 쇄빙선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극항로 개발을 위한 첨단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적 분쟁 고조되는 북극항로

박종관 조선대학교 유럽언어문화학부(러시아어전공) 교수는 '북극항로의 개척과 미래에 대한 소고'에서 북극으로 향하는 항로를 크게 3가지로 꼽았다. 캐나다 북극해 아치펠라고를 통과하는 북서항로(Northwest Passage), 북방항로(Northern Sea Route)라고도 불리는 시베리아 북쪽 해안을 따라 연결된 북동항로(Northe-East Passage), 북극점(North Pole)을 통과하는 북극관통항로(Transpolar Sea Route) 등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북동항로, 즉 러시아가 자국 내 항로에 대해 명칭을 붙인 북방항로가 유럽과 아시아 사이를 오가기에는 가장 편리하다고 볼 수 있다. 여름에 주로 이용되는 북서항로는 주로 북부 지역에서 캐나다와 미국 해안 경비대 선박에 의해 산발적으로 이용되는 반면, 북방항로는 러시아 선박에 의해 이미 일년 내내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북극해의 자원 개발과 항로 이용을 둘러싼 국제 분쟁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법적 해석, 주권 주장, 안보 전략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는 모양새다. 북극권의 경쟁을 촉발한 국가는 바로 북극권 육지면적의 40% 이상과 북극권 해안선의 53%를 차지한 러시아다. 러시아는 1990년대부터 북방항로를 자국의 내해적 성격으로 규정하고, 항해 규칙(1991), 기술 기준(1995), 법적 지정(1998) 등 3단계 조치를 통해 통제 권한을 법적·제도적으로 강화해 왔다. 이는 북극항로를 '국제 항로'가 아닌 '러시아 항로'로 고착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북극해를 횡단하는 주요 항로인 북서항로, 북동항로, 북극중앙횡단항로의 위치와 범위를 시각화한 지도이다. 세종연구원
북극해를 횡단하는 주요 항로인 북서항로, 북동항로, 북극중앙횡단항로의 위치와 범위를 시각화한 지도이다. 세종연구원

◆부상하는 북극관통항로(TSR)

최근에는 북극관통항로(TSR, Transpolar Sea Route)가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다. 한승오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의 '북극관통항로 운항 경제성 분석'에 따르면 북극점 주변의 북극해 중앙을 가로지르는 북극관통항로는 기존의 북극항로인 북서항로나 북동항로와 달리 특정 국가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최대한 우회해 북극해를 지나는 만큼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걸려있는 지정학적, 정치적 문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최단 거리로 북극해를 관통해 지나는 항로로, 항해 기간과 거리 모두 유의미하게 단축할 수 있다.

한 교수의 북극관통항로 비용-편익 분석에 따르면 북극관통항로(TSR)는 수에즈항로(SCR) 대비 총 운항 거리에서 강점을 가진다. TSR의 왕복 운항 거리는 2만7천120km로, SCR의 4만1천33km 대비 약 66%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TSR은 동일 조건에서 왕복 운항 기간이 49.74일로, SCR의 60.16일보다 10.42일 짧아진다. 결과적으로 6개월간 운항 가능 횟수가 0.55회 증가하며 회전율이 높아진다. 화물 적재율을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6개월 기준 총 물동량은 TSR이 2만5천293TEU로 SCR의 2만2천917TEU보다 더 많은 것으로 계산된다. 이는 북극항로의 상대적인 거리 단축과 빠른 회전율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비용 측면에서는 TSR이 불리한 구조다. TSR은 여전히 선박 운영비, 선원 임금, 보험료 등에서 SCR 대비 각각 30%, 50%, 25% 높은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가정됐다. 그 결과, TSR의 총 운항비는 회당 460만달러로, SCR의 393만달러 대비 약 16.77%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운임 수익에서는 TSR이 앞선다.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지수 기준으로 6개월간 총 매출은 TSR이 2천600만달러로, SCR의 2천400만달러보다 200만달러 높다.

세종대 부속 북극연구소 연구원들이 대학 컨벤션센터에서 K-AR 북극항로 개척 세미나를 열고 그동안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세종대 제공
세종대 부속 북극연구소 연구원들이 대학 컨벤션센터에서 K-AR 북극항로 개척 세미나를 열고 그동안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세종대 제공

◆"원자력 쇄빙선 필수"

박창제 세종대학교 양자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북극항로 개척 원자력 쇄빙선 전망'을 통해 원자력 쇄빙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극항로 개척을 위해 적은 양의 연료로 우수한 쇄빙능력을 제공할 수 있는 원자력 쇄빙선이 필수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원자력 쇄빙선의 경우 7년 이상 장기간 연료 공급없이 운항이 가능하며 여러 대의 소형모듈형 원자로의 도입으로 탄력적인 운항이 가능하다. 쇄빙이 필요없는 정상 운항인 경우 남은 출력을 전기로 전환해 활용할 수도 있다.

박 교수는 "한국이 북극항로를 독자적으로 개척하려면 원자력 쇄빙선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이를 위해 "50MWt급 소형모듈형원자로(SMR) 6기를 장착한 미래형 쇄빙선 개발"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