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변영진만큼 자이니치(在日) 연극에 특화된 연출가도 없다. 그만큼 정의신류가 오마주 될 정도로 극단 불의 전차를 창단한 이후 그의 작품 7할이 자이니치 삶을 다루는 연극들이다. 자이니치 삶에서 변영진은 소외의 역사와 민족성, 차별과 억압, 무국적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에서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혈전(血栓)된 아픔과 한, 균열되어진 불완전한 민족적 정서를 이들 삶의 피해 서사가 아니라, 민족성으로 일본 사회에서 버티며 살아온 집단적 감정의 에너지를 연극적으로 생산화하고 감정을 극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한 역사적 줄기는 1900년대부터 일본에서 거주하기 시작한 1세대 자이니치들이 일본 사회에서 견뎌온 혐오와 차별의 역사로, 극 중 인물들은 소외와 억압의 역사로 봉합된 존재들로 툭 치면 터질 것 같은 진공 상태로 놓여 있거나, 로켓 추진제 연료처럼 응축되어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자이니치 청춘의 '싸움의 기술'의 집단적 에너지'를 탁월하게 보여준 변영진 연출의 <장소>(극단 불의 전차, 김철의 작, 이홍이 번역, 변영진 연출 / 서울창작센터 202/ 움직임지도 김설진) 이야기다.

◇ 츠카 코헤이, 김수진, 정의신, 김철의, 변영진으로 이어지는 자이니치 연극
이러한 류의 삶들을 소재로 하거나 자이니치 작가의 작품은 1985년 故) 츠카 코헤이의 연극 '뜨거운 바다'가 한일 문화 교류가 전혀 없었던 시절 연극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신주쿠 양상박의 김수진 연출의 <인어전설>(1993)이 한강 고수부지에서 텐트 연극이라는 신개념의 이동 연극 형식을 보여주며 배우의 에너지와 무대의 강렬함, 서툰 한국말로 꽹과리, 북, 한국 가요로 삶의 애환을 전류시키는 민족성을 무대화해 한때는 그 날것의 애환을 파동시키는 무대에 환호하기도 했고, 재일한국인의 삶을 다룬 작·연출의 정의신 <아끼니꾸 드래곤, 용길이네 곱창집>, <나에게 불의 전차를>(2012), <푸른 배 이야기>(2013)부터 수많은 작품이 무대화되면서 한국 연극에 영향을 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마도 변영진 연출은 이러한 작품들을 섭렵하면서, 강렬한 무대 구조와 응고된 애환의 정서를 토해내는 배우들의 살아 숨 쉬는 존재는 연기가 아닌 마치 자이니치 동네에서 실제 체험하는 것처럼, 악과 깡만 남은 인생의 전경을 그대로 보는 듯했으니, 뜨거워진 작가적 가슴은 그대로 그의 습작 청춘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런 변영진은 대중적으로 익숙한 정의신, 김수진 작품이 아닌 제일교포 2세 김철의 작품을 선호하는데, 작품은 대체로 조선학교 시절 작가의 심연으로 투영된 자이니치 역사와 작가적 고백적 서사가 한 줄기로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카이노의 바이크>(2021)는 일본 '이카이노'에서 오토바이 한 대로 삶의 생존과 차별을 견뎌내며 살아야 했던 재일조선인의 국경 없는 이념의 삶을 다루었고, <청천장단>(2023)은 한글 이름부터 일본명까지 혼용되어 무국적자로 살아온 혼란과 혼돈의 가족사를 작가 김철의는 무대로 소환해 일본 사회에서 선을 넘을 수 없는 재일조선인 소외의 역사를 기록하면서도 위트와 신명이 넘치는, 아파도 죽도록 달리는 한 가족의 운동회를 담아내고 있다. 두 작품은 조선인으로 살아온 고단한 시간을 관통하며, 이들 몸으로 기억된 애환의 역사를 변영진은 집단적 정서와 강렬한 에너지를 무대로 발사하면서도, 이들 삶의 비극의 역사를 우리의 리듬과 박자, 정서로 관통하는 생존의 해학적 유머러스함은 강렬한 민족애로 반사되기도 한다. 이렇듯 변영진 연극은 살아 있으려는 강렬함이 배어 있고, 따뜻하면서도 짠하다. 조선인 옷에 묻어 지워낼 수 없는 페인트 자국은 자이니치의 역사가 되고, 배우들이 무대로 활보하며 거침없이 전진하는 강렬함은 연기를 에너지화하는 강함이 아닌, 김철의 작가가 살아온 삶이다.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 <장소>는 변영진 연출이 그동안 자이니치 연극을 무대화하며 축적된 테크닉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무대를 간소화해 오브제와 소도구로 극 중 장면을 씨어터 202 극장을 전체 활용해 공간화(복도, 운동장, 기악부실, 교실과 옥상 등)하는 오사카 지하철의 공간적 미장센, 조선학교 학생들의 집단적 앙상블과 군무, 배우들의 에너지는 무대에서 연기하기보다는 날것 그대로 존재하려는 현존 감각의 실제성과 웃음의 페이소스, 장면과 장면을 속도감 있게 연결해 롱테이크적 시각성으로 교차하는 장면들이 그렇다. 그럼에도 변영진 연극의 동력은 배우들의 집단적 에너지다. 무대는 조선학교 내외부의 건축적 건물 구조를 드러내고 공간을 활용한 정도로, 무대 전체가 학교의 공간이고 때로는 오사카 지하철 내부로 이동된다.

◇ 악으로 깡으로 버텨낸 '싸움'이라는 이름의 민족 서사
조선학교는 1945년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우리말과 우리글,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생겨난 국어강습소가 그 시작이다. 한때 600여 개에 달하던 국어강습소(조선학교)는 1948년 미군정과 일본의 조선학교 폐쇄령으로 모두 문을 닫게 된다. 1950년대 후반부터 다시 학교가 세워지면서 1960년대가 되면 전국에 4만여 명의 학생들이 민족교육을 받게 된다. 현재는 일본 전역 조선학교에 5,000여 명의 학생들이 조선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치마저고리는 재일조선학교의 표식(表式)이자 상징이다.
일본에서는 80년대 후반 일본 전역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조선학교 여학생들의 치마저고리 사건이 있었다. 교토와 도쿄에서는 면도칼로 찢기고, 불을 붙이는 사건도 있었다. 한때 오사카에서 발길질과 욕설로 조선학교 여학생들은 표적이 되었고, 피해자 대부분은 10대 여학생이었다. 1994년 북한 핵 개발 의혹으로 나타난 치마저고리 찢기 사건은 일본의 배외주의적 성향이 노골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치마저고리 사건은 일본 내에서 자이니치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폭력 사건이었다. 김철의는 "그때 조선학교 안에서는 우리 학생들은 우리가 지킨다는 외침과 함께 억압 속 연대가 피어났다."라고 작의를 통해 회상하고 있다. 작품은 희곡을 쓴 작가 김철의 청춘 서사이면서도 자이니치 정체성과 민족 공동체, 폭력과 연대, 성장의 서사를 오사카 조선학교를 배경으로 그려내는 작품이다.

변영진의 <장소>는 조선학교 학생인 극 중 인물 현장소(유희제 분)의 한글명 조선 이름이기도 하고, 오사카와 조선학교의 특정 장소에서 살아가며 일본인 고교생들(일본인과 일본 사회)과 충돌되는 억압과 저항의 장소이자, 김철의 작가한테는 자이니치로 살아온 역사적 줄기의 감정이 축적된 기억의 장소로, 이러한 자이니치의 차별과 조선학교 위계질서의 통제성은 화려한 싸움의 기술로 저항하던 시절로 소환된다. '싸움'은 자이니치의 반항적 기질보다 차별의 역사를 방어하는 조선인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연대적 저항이면서도, 자이니치로 살아가는 일본 조선학교 학생들은 싸움으로 다져지면서도 찐한 공동체적인 우정과 사랑도 배어 있고, 검정 교복과 치마저고리로 거문고와 장고, 북, 꽹과리를 치는 전류 적 장면들은 민족애의 장단과 리듬으로 살아가는 조선인의 삶이다. 민족 기악부의 가야금 연주는 민족적 감각을 소리로 소환하는 장치가 되고, 조선학교 학생들의 군무는 집단적 찬양 성과 통제를 시각화한 이미지다.
무대 후면은 오사카 전철 내외부로 전환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장면 전환의 속도를 높여주는 이동식으로 했는데, 사실적 효과를 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밀고 들어오고 잡아당겨서 이동해도 역사 플랫폼으로 일정하게 들어오는 지하철의 속도감처럼 공간 정착이 치밀하다. 장면의 배경은 천장 바텐을 무대 하부로 연결해 특정 장면 공간을 환기하는 장치로 미니멀하게 구조화했고, 씨어터 202의 극장 2층 높이의 무대 구조를 학교 공간(복도)로 활용하며 등 퇴장의 효율성을 효과적으로 높였다. 무대 전체를 활용하면서도 장면 연결 흐름은 배우들의 연습량이 보일 정도로 타이밍이 유연하다. 오히려 블랙박스 공간이나 축소된 무대에서 장소를 활용했다면 밀도감과 극의 몰입감을 높일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공간 활용에 대한 연출의 계산들이 적절한 배치 감각을 보여주었다.

◇류승완 영화에서 변영진의 연극적 르와르
오사카 지하철 내외부로 이동되는 첫 장면부터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2000), <다찌마와 리>(2000), <피도 눈물도 없이>(2002), <주먹이 운다>(2005) 등 영화적 클라쓰들이 오마주 될 정도로 싸움의 격투 장면은 누아르 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허술함이 없다. 영화적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격투 장면을 극대화한 것도 입체적인 사실감을 효과적으로 높여주었고, 인공기를 휘날리며 집단 체조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김 씨 왕가의 초상화는 현장소의 화려한 높이차기로 격파되면서 조선학교 학생들의 정체성의 혼란성과 균열되어진 민족성, 조선학교의 위대한 찬양의 역사성에서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저항과 반항, 조선인 민족애의 강렬함들이 류승완의 영화처럼 무대로 감각되는 게 연극 <장소>의 특징이다.
변영진은 배우들의 감각적인 신체를 통해'싸움'이라는 의식을 집단적 리듬으로 배치하고, 위계의 저항을 조명과 사운드를 입체적으로 활용해 공간 안에서 물리적으로 확장하게 시키는데, 관객은 싸움의 기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조선학교 자이니치들이 살아가는'집단적 감정의 물리적 구조'로 체험하면서 자이니치 소외의 역사적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 만큼 서사보다 극 중 인물들의 물리적 저항성을 통해 드러내는 변영진의 <장소>는 김철의 방황적 서사이기보다는 일본 혈통의 핏줄과 맞짱 뜨며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피도 눈물도 없는 싸움으로 저항하고 연대해 뜨거운 민족성을 토해낸 작가적 기억의 서사이다. 그런 만큼, 현장소(유희제)의 청춘일지는 고백이기보다는 자이니치 청춘들이 통과의례로 거쳐온 역사인 것이다.

아쉬운 점은 변영진다움이 총체적으로 배열되어 있음에도 현장소의 현재와 과거 시공간에 발화(기억)되는 장소와 인물들의 관계적 의미들을 장면으로 부연하면서 오사카행 열차가 다소 지연되는 인상을 주었다. 싸움의 장소에서 모든 의미가 부착되어 있는데 부연은 과해질 수 있다. 작가의 플롯과 서사보다 변영진의 연출스러움이 강조되고 강한 것이 장점이면서도 숙성되어야 할 지점이다. 그럼에도 120분을 신칸센 속도처럼 웃음으로, 화려한 싸움의 기술로 무대를 효과적으로 종횡하는 연출 변영진은 자이니치 희곡에 특화된 연출가이면서도 많은 연극 팬심들이 그의 작품을 선호하는 이유이고, 무대에서 꽃보다 아름다운 청춘의 배우들은 선명한 캐릭터로 연기를 분출하며, 연극 <장소>는 현재에도 지속되는 자이니치의 삶으로 그 집단적 기억을 현재화한 연극적인 힘은 극단 불의 전차 작품에서만 감각될 수 있는 특징들이다.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 변영진 연극의 <장소>는 '서울연극창작센터 202' 극장으로 29일까지 공연된다.
유희제, 박주희, 장태민과 정명군, 김동준, 도예준, 탁승빈과 배우들은 변영진의 연극성에 특화된 배우들로 연기의 에너지들은 액선영화 촬영장처럼 무대를 활보하면서도 짠하다. 무대를 채운 5할이 배우들의 펜들로, 변영진 작품은 배우들의 집단적 에너지가 장점이고, 펜들도 집단적으로 변영진 작품을 선호하는 것이 장점인데, 그만큼 극단 불의 전차는 어떤 연극을 하던 무서울수가 없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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