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취재본부 기자
'정치부 기자' 옷이 점점 몸에 익숙해질수록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정치는 갈등과 협력을 공부하는 학문이라 스스로 기준을 세웠지만, 지난 2월부터 뛰어온 국회 현장에선 이 모습을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서로 간의 입장 차를 확인하고 입장 차가 발생하는 지점을 알아낸 뒤, 이 차이를 대화를 통해 좁혀 나간다는 것보다는 다름을 확인하고 서로 비방하며 때로는 의견을 뒤바꾸어 자신이 옳다는 주장을 거듭 이어 가는 게 지난날의, 그리고 오늘날의 국회의 모습이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뒤져 본 법률안을 보곤 무기력함이 더욱 도졌다.
최근 후보자를 둘러싼 공방이 거듭 이어지자 여야는 '인사청문회 제도' 개정에 시동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 후보자의 도덕성 논란에 대한 야권의 공세가 거세지자 정쟁을 지양하고 후보자 역량 검증에 집중하자는 취지로, 인사청문 대상자의 도덕성 검증을 분리해 비공개로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청문회 자료 제출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지난 20일 발의했다.
최근 발의된 법률안 말고도 앞선 국회에서부터 발의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도 수두룩했다. 현재 여야가 추진 중인 '도덕성 검증' '자료 제출 의무 강화' 내용을 담고 있는 비슷한 법안도 많았다.
눈에 띄었던 건 여야 공수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과거 '자료 제출 의무 강화'를 말했던 민주당은 '도덕성 검증'을, '도덕성 검증'을 말하던 국민의힘은 '자료 제출 의무 강화' 편에 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간 양당은 인사청문회를 놓고 여당일 때는 '도덕성 검증 분리'를, 야당일 때는 정권 견제 수단으로 '철저한 도덕성 검증'을 주장해 온 만큼 정권을 쥐는 쪽에 따라 청문회법 개정을 놓고 수시로 입장을 뒤바꿔 온 셈이다.
국회의원은 한 명의 입법 기관이다. 법 발의는 당의 이념과 더불어 의원 개인의 소신과 기준에 근거한다. 다만 뒤바뀐 여야 공수에 따라 어떤 철학도 없이 정쟁의 도구로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바뀌는 청문회법 개정안을 보면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거듭 맴돈다.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한 지금, 여권의 의지만 있다면 인사청문회법 개정은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권칠승 의원이 발의한 안을 전제로 법을 정비할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지만 문제는 소관위원회인 운영위원회가 언제 열릴지 기약이 없어 보이는 점이다.
그 기저에는 상임위원회 재정비를 둘러싼 여야의 이견이 봉합되지 못한 현실도 존재한다. 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는 진행 중이고, 늘 공방이 오가던 인사청문회에도 대통령이 후보자 임명 강행에 나서던 전례를 비춰 봤을 때 어쩌면 이번 인사청문회 개정 움직임도 슬그머니 없던 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인사청문회 제도의 근본 개혁은 시급하다. 여야 정쟁의 장, 여전히 신상털이식의 진행, 증인 채택과 자료 제출 미비 등 한계가 여전한 검증 방식은 24일부터 진행된 김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청문회는 여야 어느 쪽에 유리하다는 식이 아니라 건강한 갈등과 좋은 후보를 잘 뽑자는 협력의 뜻 안에서 전문성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로 나아가야 한다.
딱히 미래가 밝지 않아 보이지만 이재명 대통령도 제도 개선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점이 한 줄기 희망처럼 보인다. 이제 300명의 국회의원이 답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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