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김수용] 해협(海峽)

입력 2025-06-24 20:00:44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역사적으로 해협은 흐름과 막힘, 통로이자 충돌의 상징이다. 대양을 이어 주는 좁은 바닷길이면서 동시에 맞닿은 대륙 문명이 충돌하는 곳이었다. 해협(strait)은 '좁은, 제한된'이란 뜻의 라틴어 'strictus'에서 유래(由來)했는데, 지형적 의미뿐 아니라 지정학적 갈등까지 내포(內包)한 느낌이다.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가려면 유럽의 스페인 남부와 아프리카의 모로코 북부 사이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가장 좁은 곳은 폭이 14㎞에 불과해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주요 통로다.

지중해를 지나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면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반도 사이의 홍해에 이르는데, 여기서 인도양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예멘, 소말리아 등과 접한 바브엘만데브 해협이다. 수에즈 운하가 뚫린 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붐비는 항로가 됐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벌어진 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叛軍)이 아덴만으로 향하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봉쇄하겠다면서 홍해를 오가는 배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원유와 LNG를 싣고 페르시아만을 떠난 배가 아라비아해와 인도양에 닿으려면, 세계의 이목(耳目)이 집중되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수밖에 없다. 미국 공습 직후 이란 의회는 해협 봉쇄를 의결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로 갈등과 긴장의 무대였고, 해협을 막겠다는 위협도 있었지만 전면 봉쇄를 공식 선언한 것은 처음이다. 현지시간 23일 이란과 이스라엘이 휴전에 합의함에 따라 해협 봉쇄 위기는 넘겼지만 돌발 교전이 발생하면 합의가 무산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호르무즈 해협을 무사히 통과해 인도양을 가로지른 뒤에 동아시아까지 가려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해협 한 곳을 더 거쳐야 한다. 바로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사이의 길이 1천㎞ 남짓한 말라카 해협이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통로다. 폭이 좁고 수심도 극도로 얕은 이 해협을 전 세계 해상 운송량의 20%가량이 통과한다. 이처럼 세계의 주요 해협들은 각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각축장(角逐場)이다. 바다의 지름길인 해협이 막히면 세계 경제는 동맥경화에 걸리게 된다. 해협 봉쇄가 단순한 위협을 넘어 공멸(共滅)로 이끄는 시한폭탄인 이유다.

ksy@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