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같은 대통령실' 안 만들려면… "대선 전 주요 후보자별 인수조직 있어야"

입력 2025-06-21 09:00:00

국회입법조사처 '선거전인수위' 설치 방안 대안으로 제시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 논란 등 빚었던 미국도 비슷한 고민
유력후보자에게는 선거 기간 중 정부부처 브리핑·자료 제공
긴급한 상황에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정부 출범 뒷받침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기 위해 수화기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기 위해 수화기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인수위 없는 정부 출범으로 인한 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통령 파면 시 즉시 대통령실에 '대통령실 인수조정위원회'를 설치해 대통령직 인수인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슷한 상황이 2017년과 2025년 두차례 있었던만큼 제도적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성이 확인됐다는 지적이다.

◆'무덤 같은 대통령실' 인수위 부재에서 비롯

"용산 사무실로 왔는데 꼭 무덤 같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첫날인 지난 4일 새 정부 인사를 발표하며 남긴 말이다. 이 대통령은 "지금 용산 사무실로 왔는데 꼭 무덤 같다. 아무도 없다. 필기도구 제공해 줄 직원도 없다. 컴퓨터도 없고 프린터도 없고. 황당무계하다"고도 덧붙였다.

이런 상황은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해 대선 직후 정부가 출범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통상 대통령 당선인이 새정부 출범을 위해 인수위를 운영하며 국정운영의 계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이번처럼 당선 직후 임기가 시작되는 '탄핵대선'의 경우 이런 절차가 불가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준비나 업무 연속성 확보조차 어려웠던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17일 '선거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설치 논의와 개선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현 실태를 진단하는 한편 '대통령실 인수조정위원회' 사전 설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나섰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인수위원회는 대통령당선인에 대한 보좌기관이기 때문에 선거 결과가 결정된 이후에만 설치될 수 있으며, 대통령의 임기 시작일 이후 30일의 범위에서 존속할 수 있다. 대통령선거 직후 바로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는 상황에서 인수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앞서 인수위 없는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에는 정부 출범 1주일 후인 5월 16일 대통령령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고, 5월 22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출범해 인수위원회의 역할을 대신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다만 이 자문위마저 인력과 자원의 부족 문제 뿐만 아니라 국정과제의 계획과 추진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짚었다. 당시 자문위원장을 맡았던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이미 정부가 일을 하는 상태이다 보니까, 대통령과 자문위원들이 충분한 토론을 하거나 이견을 확실하게 조정하지를 못했다"며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새 정부 첫 인사 발표에서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새 정부 첫 인사 발표에서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도 비슷한 고민

2000년 대선에서 플로리다주 재검표 논란으로 대선 결과 확정이 지연됐던 미국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통상 2개월 이상 주어지는 인수 기간 대신 39일 만에 인수 작업을 마무리해야 했다

9·11 테러조사위원회(9·11 Commission)는 2000년 대통령선거 이후 인수 작업의 지연이 신임 행정부의 주요 안보 인사 임명과 정보 인수에 차질을 빚어 이듬해 테러에 대한 국가안보역량의 공백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2008년 대선 이후 인수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전임 행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부처별 인수 책임자 지정, 정보 제공, 보안검색 등 에서 준비가 체계적이지 못했고, 취임 후 주요 직위의 공석이 장기화되는 상황이 지속됐다는 것.

이에 미국은 2010년 '선거전 대통령직인수법'을 제정해 거대 양당의 대통령 후보자, 그리고 여론조사상 지지율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기타 후보들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을 의무화했다.

이를 통해 이들은 정부부처별 브리핑, 보안이 보장된 통신서비스와 기록물 등을 제공받으며 새정부 출범 준비를 선거일 전부터 미리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대선 전 조직운영으로 공백 최소화

국회입법조사처는 현직 대통령이 파면될 경우 즉시 대통령실 인수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는 대로 선거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이런 맹점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공직선거법상 대선 240일 전부터 예비후보자등록을 허용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선거일 240일 전부터 대통령실에 (가칭)대통령실 인수조정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고, 주요 정당의 후보자가 선출되는 시점에 선거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

특히 현직 대통령이 파면된 상황에서는 파면 즉시 '대통령실 인수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대통령 후보자가 선출되는 대로 선거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전임 정부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고 준비를 마치지 못한 새 정부는 긴급한 상황의 대응에서 더욱 취약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국정운영의 계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선거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설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