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강한 자는 힘을 자랑하지 않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5일 미 육군 창설 250주년 기념일에 수도 워싱턴 DC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열었다. 자신의 79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미국의 군사 퍼레이드는 1991년 걸프전 승리 이후 34년 만이다.
조지 H.W. 부시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이번 퍼레이드가 진행된 컨스티튜션 애비뉴를 따라 탱크들이 행진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인 2017년에도 열병을 추진했지만 9천200만 달러(약 1천30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과 기타 준비·운영 문제 등으로 실행하지 못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대혁명기념일인 '바스티유의 날' 군사 퍼레이드 행사에 참관한 뒤 이와 비슷한 행사를 열기 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프랑스는 1789년 혁명가들이 옛 요새였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군주제 폭정에 항의한 것을 상징하는 '바스티유 데이'에 매년 군사 퍼레이드를 개최한다.
미국 동쪽 한편에서는 워싱턴 DC의 군사 퍼레이드가 열렸지만, 미국의 다른 반대쪽인 캘리포니아를 비롯해서 전국에서는 수십만 명이 "노 킹스(No Kings, 왕은 없다)"라는 트럼프의 정책에 반대하는 구호와 함께 전국적이 거리 행진이 있었다. LA에는 진압과 질서 유지를 위해 주 방위군 4천여명이 투입되고, 해병대 700명도 추가 파병됐다.
군 투입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정치적 계산, 그리고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 변화의 맥락에서 그 속내를 읽을 필요가 있다. 다시 장소를 옮겨보자. 수만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독립전쟁 당시 복장을 한 병사들, 2차 세계대전의 셔먼 전차, 그리고 현대 군사 충돌에서 사용된 중장비 등이 선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미국 판 '바스티유의 날' 이었을까? 미국 사회와 리더십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군이 정치에 동원됐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은 군인들이 한 사람이나 정당에게 충성을 보이도록 유도되는 상황은 절대 만들지 않았었다. 선을 분명히 지켰다. 군인들을 정치적 교전의 한가운데에 서는 순간, 군은 더 이상 헌신적인 봉사자로 보이지 않고 정치 플레이어로 인식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국민이 가진 군에 대한 신뢰도 사라진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로스앤젤레스의 반-이민세관 단속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주방위군과 미 해병대를 투입했다면 당연히, 왜 이런 조치를 취했는지,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했어야 했다.
같은 날 이른 새벽 (미 중부 시간) 미네소타에서는 두 명의 주 의원이 총격을 당했다. 이 중 한 명은 사망했다. 팀 월즈(Tim Walz) 주지사는 이들이 정치적 이유로 표적이 되었으며, 용의자가 낙태 권리를 지지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포함한 타깃 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주 정부는 해당 지역의 "노 킹스" 시위에 접근하지 말 것을 시민들에게 요청했다. 텍사스 오스틴에서는 시위에 참석할 예정이던 의원들에게 "신빙성 있는 위협"이 확인되었다며 대피 조치를 취했다.
'노 킹스' 시위현장 분위기는 워싱턴 디시의 조용하지만 축제 분위기를 띤 퍼레이드 현장 장면들과 대조를 이루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침을 뱉으면, 우리는 때린다.". 경고가 아니라, 오히려 기대에 찬 흥분된 표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들은 시민을 향해 머리를 피투성이로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다. 국민들에게 정부의 힘을 사용할 때는 최대한 인내하고 자제해야야지, 기꺼워해서는 안 된다.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1992년 LA 폭동 때 주방위군 투입을 명령하지 않았다. 위헌이었다. 로드니 킹 폭행 사건 가해 경찰 4명'에게 무죄 판결이 나자 당시 LA는 폭발했었다. 경찰은 제압하지 못했고, 약탈·방화·폭행이 잇따랐다. 63명이 사망하고, 2천 명이 부상했으며, 1만 2천 명이 체포되었다. 마침내 LA 시장과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요청으로, 부시 대통령은 그제서야 주방위군을 연방화하고 해병대와 육군 병력을 파견했었다. 연방군은 4월 29일에 시작된 폭동을 5월 2일쯤 제압하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은 전국 연설을 통해 군을 동원하게 된 자신의 판단과 사실관계를 자세히 설명했다. 국민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아 진정성있게 설명했다. 그 누구도 당시 부시 대통령이 권위주의적 조치의 시작을 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스티유 데이'의 군사 퍼레이드는 루이 16세가 통치하던 '절대왕정 체제'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불만이 누적된 것의 폭발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전제정치의 상징이 바로 바스티유 감옥이었다. 국가 재정이 파탄나고, 흉작과 곡물가격이 폭등했고,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 속에 '앙시앙 레짐'이라는 구제도 하에 고작 2% 남짓하던 특권세력들에 대한 98% 국민들의 당연한 저항이었다. 1789년 8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제정되었다. 적어도 미국은 이런 국가는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의 리더십은 번쩍이고 위협적인, 허세 넘치는 퍼레이드로 마치 소련의 메이데이 퍼레이드 같고, 북한이 여전히 하는 방식은 아니다. "위험한 세상에서, 이란이나 중국 같은 나라들이 우리가 가진 것을 보도록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설마 미국이 이렇게 생각했을까? 만일 그랬다면, 이건 미국의 방식이 아니다.
진짜 강함이란 과시하지 않는 것이다. 너무 크고 강해서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의 소용돌이는 주변에 모든 것을 안으로 휘감아 버린다. 이란-이스라엘 전쟁도 미 정보 당국은 이란이 핵 개발까지는 수년이 걸린다고 했었다. 올해 3월 의회 청문회장에서 증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개발 가능하다."고 이스라엘을 두둔한다. 냉전 이후 공화당과 민주당 대통령들은 전통적인 지원 기관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자체 대안을 만들었다. 예컨대, 빌 클린턴의 아프리카 부채 감면 정책, 조지 W. 부시의 밀레니엄 챌린지 공사 및 에이즈 긴급 대응 계획, 버락 오바마의 파워 아프리카, 그리고 트럼프 1기 정부의 프로스퍼 아프리카(Prosper Africa) 및 개발 금융 공사 (Africa Finance Corporation, AFC) 등이 있다.
미국의 리더십을 시대 변화에 맞게 재구성하는 최선의 방법은 새로운 전문 조직을 늘리는 것보다, 기존 기관을 개혁하고 재구조화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낡은 제도를 와해하려는 개혁적인 도전은 미국의 진정한 리더십이 숨어 있는 비군사적 무기를 강화할 수 있는 큰 기회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이처럼 적과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두고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柔之勝剛, 부드러움이 결국 강함을 이겼다.
리엔경제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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