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가해자였다"…쿠팡 노조 지회장 전격 사퇴

입력 2025-06-18 09:51:52 수정 2025-06-18 09:57:12

직장 내 괴롭힘 인정…"피해자께 깊이 사과드린다"

블라인드 캡쳐.
블라인드 캡쳐.

쿠팡 노조 지회장이 노동조합 출범 하루 만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인정하며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지난 17일 출범한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산하 쿠팡지회는 본사와 계열사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한 첫 노조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출범 직후부터 지회장 이항수 씨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내부 반발이 이어졌고, 결국 하루 만에 자진 사퇴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항수 전 지회장은 이날 오후 구성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저와 관련한 과거의 일로 인해 불편함과 우려를 느끼신 분들께 진심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며 "약 8년 전 계열사 영업 업무를 하며 동료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했고, 회사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징계를 받은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피해자 분께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며 "당시 그 모습을 기억하고 계신 동료 여러분께도 실망을 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과거의 잘못을 잊지 않고, 그 반성을 실천으로 이어가기 위해 선택한 자리였지만, 이제 막 새로 태어나는 노동조합에는 더 적절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이 전 지회장은 지회장직을 내려놓고 조합원으로서 노동조합을 응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사퇴 의사를 공식화했다.

이에 따라 쿠팡지회는 박수윤 씨를 신임 지회장으로 선출했다. 박 지회장은 당초 노조 설립을 제안했던 인물로, 기존 사무직 라인에서 노조 결성을 주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수윤 신임 지회장은 같은 날 오후 노동조합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더 투명한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부족한 점이 많은 노조이지만 직원들의 응원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힘들게 탄생한 노동조합인 만큼 함께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본지는 쿠팡지회 출범 당일인 17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와 사내 익명 게시판 등에 이항수 전 지회장의 과거 직장 내 괴롭힘을 문제 삼는 글이 다수 게재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일부 직원들은 "징계를 받은 사람이 노조를 대표할 수는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직장을 떠난 후배가 해당 인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증언도 이어졌다.

이 같은 내부 고발성 증언이 잇따르자, 이 전 지회장은 출범 하루 만에 공개 사과문과 함께 전격적으로 사퇴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산하 화섬식품노조 소속 쿠팡지회는 네이버, 카카오, 넥슨 등과 마찬가지로 IT·플랫폼 기업 내 사무직 중심 노조로는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쿠팡 내 노동조합은 기존에도 물류·배송 인력을 중심으로 한 노조가 존재했지만, 본사 사무직을 대상으로 한 조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노조 출범과 동시에 지회장을 둘러싼 잡음이 불거지면서, 쿠팡지회는 첫발부터 삐걱거리는 모습을 드러냈다. 내부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돼야 할 노조가 출범 직후부터 구성원 간 불신과 갈등에 직면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