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촉발지진 8년…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날의 공포'

입력 2025-06-17 16:46:09 수정 2025-06-17 20:56:00

'작은 진동에도 공황장애 여전' 고통 호소하는 주민들
트라우마센터 정신건강 고위험군 접수 1년에만 50여명

포항 지진 이후 고위험도 정신적 장애 증상을 나타내고 있는 주민들이 포항트라우마센터 숲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해 서로의 경험담을 털어놓고 있다. 포항트라우마센터 제공
포항 지진 이후 고위험도 정신적 장애 증상을 나타내고 있는 주민들이 포항트라우마센터 숲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해 서로의 경험담을 털어놓고 있다. 포항트라우마센터 제공

"불면증에 힘들어도 수면제를 못 먹어요. 잠들어 있는 순간에 지진이 오면 피하지 못할까 봐…."

2017년 11월 15일 이후 A(60·포항시 북구 창포동) 씨의 인생에서는 '여행'이란 단어가 사라졌다. 차가 움직이는 동안 흔들리는 그 진동이 촉발지진 때 기억을 자꾸 되뇌게 하는 탓이다.

아파트 20층에 살던 A씨는 지진이 발생하던 그때 급히 피난하느라 몇 번이나 계단을 굴렀다. 온몸에 든 타박상은 몇 달 지나 괜찮아졌지만, 그날의 끔찍했던 공포는 더 깊게 새겨졌다.

A씨는 "병원 진료처럼 어쩔 수 없이 차를 타야 될 때면 눈을 질끈 감고 빨리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도한다. 작은 진동에도 숨을 못 쉬겠고,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진 발생 진앙지였던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서 농사일을 하던 B(59) 씨는 자신보다 배우자의 트라우마에 더한 고통을 느끼고 있다.

B씨의 배우자는 당시 창고에 있다가 지진 때문에 문이 잠기며 몇 시간이나 혼자 어둠 속에 있어야 했다.

배우자가 불면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상담치료를 이어가던 도중, 이를 돌보던 B씨 역시 극심한 스트레스로 결국 정신장애 고위험군 판정을 받았다.

포항 지진 발생 이후 피해 주민들의 정신상담을 위해 문을 연 포항트라우마센터에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트라우마센터는 CGI-S(임상적 전반적 인상-중증도 척도·Clinical Global Impression-Severity)란 정신과 진단 프로그램을 통해 상담자의 위험도를 분류한다.

트라우마센터가 문을 연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662명의 주민이 고위험군인 CGI-S 4단계 이상 판정을 받았고, 이중 단 1.2%(79명)만이 정상 수치로 돌아섰다.

고위험군 상담자를 위한 치유 프로그램에 지금도 매년 50여명의 주민이 모여 꾸준히 치유를 이어가고 있으며, 경상 분류(CGI-S 3단계)에도 연 100여명의 주민들이 참여 중이다. 수천 명이 몰리며 번호표까지 뽑아야 했던 초기보다는 많이 줄었다.

김정아 포항트라우마센터 정신건강사회복지사는 "인근 공사 때마다 동네를 떠나거나 휴대폰 진동조차 못 견뎌 무음만 해놓는 등 많은 분들이 지금도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