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돌봄을 스스로 알리는 청년들은 극히 일부"…대구 돌봄청년 5만1천332명으로 추산
지자체마다 돌봄청년 연령 범위 제각각…대구 안에서도 달라
"대구시 가족돌봄청년 전담 인력 배치 및 실질적 지원 체계 마련해야"
돌봄청년들은 가족을 부양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으면서 생애주기별 과업을 놓치고 있다. 본인보다 가족의 인생을 우선 고려하는 탓에 삶의 분기점을 놓치고 미래 낙오자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복지 울타리가 누구보다 절실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의 정확한 현황조차 집계하지 못하고 있다. 지원 프로그램도 소득을 기준으로 제한하는 등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통계조차 파악되지 않는 가족돌봄청년
대구에 거주하는 초등학교 5학년 황세희(11·가명) 양은 지난해 가족돌봄청년으로 사례 관리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유방암을 앓는 어머니 대신 지역아동센터를 찾고 어려움을 알렸다. 센터는 세희 양을 아동복지전문기관인 초록우산에 연계해 돌봄서비스 등을 받도록 했다.
세희 양은 "센터에서 부족한 공부를 시켜주고 있고 저녁밥도 챙겨준다. 혜택이 많은 것 같아서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앓고 있는 동생도 데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을 부양하는 청년들 모두가 자발적으로 어려움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세희 양처럼 센터나 복지관을 직접 찾아 아픈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돌봄청년은 극히 일부다.
초록우산 대구지역본부 관계자는 "먼저 가족돌봄청년이라고 밝히는 사례는 정말 손에 꼽힌다"며 "대부분 청년들은 복지제도와 같은 정보를 접하는 데 한계가 있고, 아픈 가족을 돌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자신이 돌봄청년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돌봄청년은 힘든 가정사를 외부에 알리기를 꺼리면서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연구기관과 민간단체 등 조사 기관별로 돌봄청년의 연령이나 정의 등 기준도 제각각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펴낸 '한국의 사회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가족돌봄청년(13~34세) 추정치는 15만3천44명이다. 이는 ▷가구 내 6개월 이상 돌봄을 필요로 하는 가족원 존재 ▷돌봄이 필요 없는 중장년(35~64세) 가족이 없는 경우 등에 해당되는 사례들만 추린 수치다.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가족돌봄청년 현황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는 지난 2023년 실태조사를 통해 전국 돌봄청년을 9만2천93명으로 추산했다. 조사 과정에서 자료 활용 기준이 상이해 추정치 차이도 큰 상황이다.
대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은 지난해 2월 기준 지역에 5만1천332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설문조사에서 도출된 돌봄청년 추정 비율을 지역 인구에 적용한 수치다. 이와 달리 대구시는 전체 돌봄청년을 200명 안팎으로 집계하고 있다.
김지선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부연구위원은 "가족돌봄청년 수를 추정할 때 인구 총조사 자료를 근거로 하는 기관도 있고, 설문조사를 활용해 파악하는 곳도 있다. 어떤 데이터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추정치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 가족돌봄청년의 연령 범위가 제각각

2022년 초 정부가 가족돌봄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을 발표하면서, 각 지자체는 조례를 제정하며 법적 근거 마련에 나섰다. 초록우산이 펴낸 '가족돌봄 아동·청소년의 특성과 돌봄 현실에 기반한 지원방안 모색'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전국에 91개의 가족돌봄청년 관련 조례가 제정되어 있다. 주된 내용에는 지원사업과 실태조사, 기관·단체와의 협력 등이 담겼다.
문제는 지자체마다 돌봄청년에 대한 연령 범위가 상이하다는 점이다. 지자체들은 최소 연령을 9~18세 범위에서 정했고, 최고연령 또한 18~39세 사이로 명시하고 있다. 돌봄청년을 고려하는 기준이 달라, 조사·발굴 과정에서 혼선을 빚을 우려도 크다.
대구에선 대구시와 서구, 달서구 등이 가족돌봄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상태다. 하지만 같은 대구 지역에서도 연령 범위가 통일되지 않는다.
달서구의 경우 돌봄청년을 9세부터 39세로 규정하고 있지만, 대구시와 서구는 최고연령을 34세까지로 제한했다. 달서구에 거주하는 35~39세의 돌봄청년이 대구 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조례는 있지만 뚜렷한 후속 대책이 없어 그 취지가 무색해지는 경우도 적잖다. 지난해 조례를 시행한 서구와 달서구는 지원계획의 수립이나 관련 사업을 수행한 적이 없다. 서구·달서구청 관계자는 "대구시에서 사업이 내려오는 걸 연계해서는 하고 있지만,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은 없다"고 말했다.
◆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친 지원책들

최근 몇 년간 가족돌봄청년들을 지원하는 제도들이 속속 만들어졌지만, 청년들이 피부로 와닿는 데까지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시는 지난해부터 돌봄청년들에게 '일상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요양보호사 또는 가정관리사 등이 아픈 가족의 병원 동행부터, 집안일을 지원하면서 청년들의 어려움을 해소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일상돌봄서비스는 돌봄청년들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해당 서비스는 매달 최대 72시간까지만 주어진다. 돌봄청년들이 하루에 2시간밖에 자기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화된 본인 부담금도 내야 한다.
일상돌봄서비스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평가도 있다. 대구 한 일상돌봄 사회복지사는 "서비스 제공자가 가사 지원을 위해 집에 방문하는데, 요리를 해줄 경우 음식을 구매해서 가는 게 아니다"며 "이용자인 청년들이 장 봐놓은 걸 조리해 주는 정도에 그친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식재료를 준비하지 못하는 상황이면 해당 서비스가 무용지물이 된다"고 했다.
지원 대상을 소득 기준으로 제한하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대구시는 올해부터 초록우산 후원을 통해 돌봄아동청년에게 생계비와 교육비, 주거비 등 가족돌봄비 명목으로 가구당 최대 1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중위소득 100% 이하만 해당된다는 점이다.
연령 또한 만 24세 이하로 범위를 좁혔는데, 이는 가족돌봄청년의 최고연령을 34세로 고려하는 대구시 조례와도 어긋난다.

정부가 돌봄청년의 적성과 진로 희망 등을 상담하면서 미래설계를 돕도록 하는 '청년미래센터'는 일부 지역에 그친다. 인천 미추홀구와 울산 중구, 전북 전주시, 충북 청주시 등 4곳에만 설치되어 있다. 사실상 대구에는 돌봄청년을 전담하는 기관이 부재한 상태다.
김재우 대구시의원은 "대구시는 조례에 명시된 지원계획과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청년미래센터 같은 거점 기반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 또 전담 인력 배치와 자기돌봄비용 등 실질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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