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갤러리 대구점 큐레이터
얼마 전 인도 출신 미술가 마크불 피다 후세인(M.F. Husain)의 1954년 회화가 뉴욕 경매에서 1천380만 달러(한화 약 185억원)에 낙찰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낙찰가는 최초 추정가의 400%나 높은 가격을 갱신하며 남아시아 작가의 미술품 경매 금액 중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인도 현대미술의 대표하는 또 다른 예술가인 타이유르 메타(Tyeb Mehta)와 바수데오 가이트론데(Vasudeo Gaitonde)의 작품 역시 수백만 달러에 거래되며, 글로벌 미술 시장 내에서 '인도 붐'을 이끌고 있다.
주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네팔 등 남아시아에 이르는 거대한 문화권의 예술은 오랫동안 '특이한 것'으로 간주되거나, 민속이나 공예로 축소되며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이국성'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며, 국제 미술 시장에서 현대 남아시아 미술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경제적 수치들은 하나의 전환점으로, 한 시대를 견뎌낸 문화와 미학이 드디어 세계 무대 위에서 주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최근 영국의 테이트 모던은 남아시아 여성 예술가들의 전시와 더불어 남아시아 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큐레이터 데비카 싱(Devika Singh)를 영입하며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도쿄의 모리 미술관 등에서도 남아시아 현대 작가들의 전시가 잇따르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구조적 재편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남아시아 출신의 현대 작가들이 있다. 그들은 단순히 전통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뿌리 깊은 역사와 식민의 상처, 디아스포라의 정체성, 젠더와 종교의 충돌 같은 복합적인 현실을 예술 언어로 증언한다. 파키스탄 출신의 샤지아 시칸더(Shahzia Sikander)는 미니어처 회화의 전통을 디지털 미디어와 결합해, 이주자의 기억과 정체성을 정교하게 직조해낸다. 인도의 날리니 말라니(Nalini Malani)는 애니메이션과 투사 설치를 통해 여성의 몸과 폭력, 침묵의 역사를 시각화하고, 방글라데시 작가 타예바 리피(Tayeba Begum Lipi)는 면도날과 바늘 같은 재료로 가부장적 억압을 해체한다.
이 모든 흐름은 미술이라는 언어가 더 이상 서구 중심의 이야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자각을 반영한다. 남아시아 미술은 단지 '특이한 것'이 아니라, 세계 미술이 지닌 복합성과 다양성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거다. 탈식민 이후의 세계에서 예술은 이제 하나의 시선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리고 그 다성적인 풍경 속에서 남아시아 미술은 더 이상 경계의 미술이 아니라 중심의 언어로 다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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