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마른하늘에 얼음폭탄…올해 청송사과는 '진짜' 없다

입력 2025-06-02 15:15:55 수정 2025-06-02 18:45:16

멀쩡한 사과를 찾을 수가 없다
딱 20분… 하늘이 내려친 1년 농사
사과는 멍들고, 농심은 타들어가고

30일 경북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 한 과수원. 지난 28일 내린 우박으로 사과에 깊은 상처가 생긴 모습. 전종훈 기자
30일 경북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 한 과수원. 지난 28일 내린 우박으로 사과에 깊은 상처가 생긴 모습. 전종훈 기자

지난 30일 오전 경북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 마을 입구를 지나자마자 양옆으로 드넓은 사과밭이 펼쳐졌다. 하지만 초록 이파리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사과들의 빛깔이 이상했다. 붉은빛 대신 거무죽죽한 상처가 얼룩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손에 쥐어보니, 겉껍질은 푹 꺼지고 속살은 우그러져 있다. 멀쩡한 사과를 찾기 힘들다. 나무 한 그루에서 정상 열매는 20~30%도 채 되지 않는다.

"이건, 무슨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습니다."
농민 A씨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한 손으로 상처 입은 사과를 비틀어 따냈다. 이틀 전인 28일 오후 5시쯤 평소처럼 고요하던 하늘이 갑자기 시커멓게 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둑알만 한 우박이 마을 전체를 덮쳤다.

"딱 20분이었어요. 근데 그 20분 동안…. 1년 농사가 무너졌습니다."

30일 경북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 한 과수원. 지난 28일 내린 우박으로 사과에 깊은 상처가 생긴 모습. 전종훈 기자
30일 경북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 한 과수원. 지난 28일 내린 우박으로 사과에 깊은 상처가 생긴 모습. 전종훈 기자

그날 현서는 '마른하늘의 재앙'을 맞았다. 갑작스레 구름이 몰려들고, 알약 크기에서 바둑알 크기의 우박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농민들은 급히 과수원으로 뛰어갔지만, 하늘에서 퍼붓는 얼음덩이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피해 농민 B씨는 사과나무 아래 주저앉은 채 속을 끓였다.
그는 "우박 맞은 사과는 따기도 어렵고, 판다고 해도 값이 안 나간다"며 "비료 값이라도 건지려고 이 나무를 붙잡고 있다. 가슴이 그냥 타들어간다"고 말했다.

이번 우박 피해는 청송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로 발생했다. 현서면 300㏊, 현동면 40㏊, 안덕면 10㏊ 등 총 350㏊ 면적에 495농가가 피해를 입었다.

더구나 올해 봄엔 냉해로 착과량이 적었고, 열매솎기까지 끝낸 민감한 시점이었다. 그런 와중에 날벼락처럼 우박이 내려, 피해는 두세 배로 불어났다.

청송읍, 파천면, 진보면, 주왕산면 일대는 지난 3월 대형 산불로 사과밭이 초토화된 바 있다. 남부지역까지 우박 피해가 덮치면서 '청송사과'는 올해 대재앙을 맞았다. 사과의 고장이라 불리던 청송이 지금은 상처 입은 붉은 절규로 가득 차 있다.

현서농협 등은 우박이 발생한 다음 날 긴급하게 침투성 살균제와 영양제 살포 요령을 문자로 발송하며 사후 관리를 독려했지만, 많은 사과는 이미 상품성이 떨어졌다.

김진업 현서농협 전무는 "우박 직후 현장을 돌았지만 말 그대로 '참사' 수준이었다"며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농민들은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었다"고 전했다.

30일 경북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 한 과수원. 지난 28일 내린 우박으로 사과에 깊은 상처가 생긴 모습. 전종훈 기자
30일 경북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 한 과수원. 지난 28일 내린 우박으로 사과에 깊은 상처가 생긴 모습. 전종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