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김수용] 흔들리는 달러, 환율 협상 신중히 접근해야

입력 2025-05-26 19:43:45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미국발 관세 전쟁으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환율마저 출렁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하루에도 수십원씩 오르내릴 정도다. 미국은 무역 불균형 해소를 천명하며 관세와 환율이라는 2가지 공략법을 택했다. 기축통화(基軸通貨) 지위를 유지하면서 미국에 유리하도록 달러화 절하(切下), 즉 대미 무역 흑자국 화폐의 평가절상을 꾀하고 있다. 주요 타깃은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인데, 모두 지난해 기준 미국의 무역 적자 상위 10개 국가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미국의 원화 절상 요구 보도가 나오면서 원·달러 환율은 급락했다. 기획재정부가 "환율 협의가 진행 중이나 구체적으로 정해진 내용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시장 움직임을 진정시키지는 못했다. 원화뿐 아니라 주요 아시아 통화를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과 협상 소식이 들릴 때마다 환율은 들썩일 것이다.

안전 자산의 대명사인 미국과 일본 국채를 동시에 투매(投賣)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5%를 넘겼고, 시장 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 국채 금리도 4.6%로 급등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미국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한 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감세안을 밀어붙일 뜻을 강하게 밝히면서다. 트럼프는 법인 최고 세율과 개인 소득세율 인하, 소득공제 및 자녀세액공제 확대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감세안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 연방하원 본회의에서 찬성 215표, 반대 214표로 간신히 통과됐다. 상원까지 통과해 최종 확정되면 미국의 재정적자는 2024년 연 1조7천억달러에서 2035년 2조5천억달러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재정적자가 커지면 미국 국채는 더 불안해진다. 중국이 지난 2013년 11월 1조3천160억달러에 달했던 미국 국채 보유액을 올해 3월 7천653억달러까지 줄인 이유이기도 하다. 상호 관세는 미국 국채에 악재다. 미국 국채를 사들일 돈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벌어들인 달러다. 중국은 미국에서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여 지금껏 미국 국채를 매입해 왔고, 양국은 무역적자와 대미 투자의 선순환(善循環) 구조를 누려 왔다. 관세 전쟁이 격화돼 무역흑자가 줄어들면 미국 국채에 대한 매력은 더 떨어진다.

이런 혼란 속에 한미 환율 협상이 진행 중이다. 환율은 관세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작위적(作爲的)인 환율 조정은 국가 경제를 뒤흔든다. 협상의 구체적 내용을 흘리지 않는 까닭도 의도치 않은 결과를 우려해서다. 시장은 충분한 합의와 협상을 통한 일정 부분의 환율 목표치 조정은 납득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불거지는 불협화음 탓에 변동성이 커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예측 가능한 변화는 용납하지만 예기치 못한 급등락은 시장에 충격만 안겨 준다.

지난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에 관세를 부과한 후 위안화 약세로 관세 효과가 상쇄되자 2019년 8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위안화 약세는 미국 관세의 결과물이었다. 미국이 원인을 제공해 놓고 중국 정부가 환율 조작에 개입했다고 떠넘겼다는 말인데,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미국의 속셈이었다. 지난해 10월 이후 벌어진 원·달러 환율 상승도 마찬가지다. 국내 정치 불확실성과 미국의 통화·경제 정책 변화 탓에 벌어졌을 뿐 한국 외환당국의 개입은 없었다. 마음이 급한 미국은 환율 조작 운운하며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자 할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임해야 한다. 끌려다니는 협상의 결과는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