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탕' 전국법관대표회의…'사법의 정치화' 자초했다

입력 2025-05-26 16:48:56 수정 2025-05-26 20:48:31

대선 앞두고 법관 목소리 내는 것 자체가 정치적 해석 낳아
회의 개최 자체부터 내부 반대 의견 많아

26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의장을 맡은 김예영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앞줄 오른쪽 세번째)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의장을 맡은 김예영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앞줄 오른쪽 세번째)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회의 개최시기 논란 속에서도 강행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결국 '맹탕회의'로 끝남에 따라 '사법의 정치화'를 자초했다는 법조계 안팎의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계기로 회의 소집이 시작됨에 따라 대선을 앞두고 법관들이 목소리를 내는 자체로 정치적 해석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기 때문이다.

26일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임시회의에는 전체 126명 중 88명의 법관들이 출석했다. 15명이 회의장으로 직접 출석했고 나머지는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이날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개최 자체부터 내부 반대 의견이 많았다. 법관대표 절반이 넘는 약 70명이 반대하는 등 회의 개최에 따른 사법부의 정치 중립성 훼손 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진보 성향 운영진이 회의개최 투표를 연장하면서까지 정족수를 채워 임시회의를 강행했다.

법관대표회의에는 회의전 '재판독립의 가치 확인 및 재판의 공정성·민주적 책임성 준수를 위한 노력'과 '특정 사건의 이례적 절차 진행으로 흔들린 사법 신뢰에 대한 인식과 개별 재판의 책임 추궁에 대한 우려' 등 2개 안건이 상정됐다.

두 안건 모두 대선 정국에서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안건이다. 특히 공식 보도자료 등에서는 이 후보 사건 논의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나 해당 사건을 공식 안건에 우회적으로 포함시키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회의 당일 5건의 안건이 추가 상정됐다. 여러 건의 안건이 이야기됐으나 제안자 포함 9명의 법관의 동의를 얻은 안건은 5건이다. 추가 상정된 안건들도 대부분 이 후보의 사건 및 재판 독립에 관한 것이다.

추가 상정된 안건 중 재판 독립과 관련해선 '정당한 비판을 넘어서 사법부 독립에 심각한 침해를 초래할 수 있는 정치적 시도들에 대해서도 우려와 반대를 표한다', '판결에 대한 비판을 넘어 판결을 한 법관에 대한 특검, 탄핵, 청문절차 등을 진행하는 것은 사법권 독립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임을 천명하고 재발방지를 촉구한다', '개별 재판을 이유로 한 각종 책임 추궁과 제도의 변경이 재판 독립을 침해할 가능성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향후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로 한다' 등이 상정됐다.

이 후보 상고심과 관련돼 '특정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전례 없는 절차 진행으로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사법부의 신뢰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친 상황에 대해 엄중히 인식한다' 등이 발의됐다.

또 '정치적 영역에서 해결할 문제가 법원의 재판사항이 되고, 재판의 결과가 곧 정치가 된다는 의미에서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가 이 시기 법관 독립에 대한 중대한 위협요소임을 인식한다',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된 현실에서 사법의 정치화를 막고 사법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권리 구제라는 본연의 임무에 바로 서기 위한 방안에 대해 분과위원회 차원에서 논의와 연구를 하기로 한다' 등의 안건도 있었다.

대선 이후 속행될 회의에선 안건들에 대한 보충 토론과 의결이 진행될 전망이다.

법관대표회의 측은 "상정된 안건이라도 차회 기일에 토론을 거쳐 수정, 철회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