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김지효] 보이지 않는 이들의 삶의 궤적을 전하며

입력 2025-05-25 15:46:33 수정 2025-05-25 17:52:39

김지효 사회부 기자
김지효 사회부 기자

한 주의 절반이 지나가는 시점이 되면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이번 주에는 어떤 가정을 방문해야 할까, 어떤 사연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걱정 탓이다. 내 손에, 두 귀와 입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는 부담감. 매일신문 '이웃사랑' 코너를 담당하는 기자로서 겪게 된 감상이다.

매일신문에서 23년째 연재하고 있는 기획 시리즈 '이웃사랑'은 매주 화요일 지면과 온라인을 통해 대구경북에 거주하는 어려운 이웃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지자체 소속 복지 담당 부서와 각종 사회복지기관 등과 협력해 발굴해 낸 난치병 환자, 장애인,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범죄 피해자, 홀몸 노인,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이들이 사연의 주인공으로 분한다. 그렇게 지난주까지 시리즈에 소개된 이들은 총 1천108명이다.

현재 복지 서비스를 받고 있는 주인공도 있었으나, 간발의 차이로 대상자가 되지 못해 어려움을 겪거나 서비스의 존재 여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수급비는 가구 평균 소비지출액에 한참 못 미치는, 최대한 아껴서 먹고만 살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 지원됐다. 여러 기관에서 위기 가구 발굴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지만, 발굴 시스템 연계 정보 특성상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지난 1월 지면에 소개된, 중고차 할부금 납부가 끝나지 않아 수급 대상자가 될 수 없었던 한 가족의 이야기처럼. 이혼 후 연락 끊긴 자식의 소득이 잡혀 의료 수급을 받지 못하는 홀몸 노인도 있었다.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차치하고서라도 대다수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점은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의지할 인적 자원'이 없다는 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가구보다 사기 등 범죄 노출에 취약했고, 범죄 피해를 당하면서 건강과 경제적 상황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살아온 삶의 궤적을 담담하게 전하던 이들은 이내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곤 했다. 기자가 그 앞에서 건넬 수 있는 말은 적당한 추임새와 고생 많으셨다는 얄팍한 위로뿐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줘서 고맙고 어쩐지 후련해졌다는 말이 돌아온다. 이 때문에 몇 시간을 함께한 공간을 떠나며 이야기 전달자로서 독자들에게 해당 사연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더 와닿을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매주 기사를 작성하고 이를 본 독자들이 보내 주신 성금을 정리하면서 드는 생각은 "왜 더 빨리 발굴해 내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다. 시리즈를 맡으며 대상자가 성금을 전달받기도 전 유명을 달리했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이들의 어려움을 파악하는 게 조금만 더 빨랐다면, 조기에 도움이 이뤄질 수 있었더라면 상황이 이 정도로 악화하진 않았을 텐데.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5년부터 2023년까지 발굴된 복지 사각지대 가구 중 실제 지원이 이뤄진 가구는 절반을 넘지 못했다고 발표한 것처럼, 위기 가구로 발굴된 이후에도 상당수가 현 상황을 타개할 만한 서비스를 지원받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복지제도 보완이 시급한 현실이나, 매주 위기 가구를 발굴해 성금을 전달하는 '이웃사랑'의 역할도 작지 않다고 느낀다. 의미 있는 걸음에 함께해 주고 있는 백 명이 넘는 독자와 단체들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모든 성금은 투명한 공개 과정을 거쳐 한 푼도 빠짐없이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달된다는 점도 기억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