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전망-최병고] 6·3 대선, 金·李 후보 단일화 향방은?

입력 2025-05-25 17:39:27 수정 2025-05-25 19:01:15

최병고(서울취재본부장)
최병고(서울취재본부장)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는 인생 2회 차를 사는 어린 진도준의 비범함을 보여 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1987년 대선 때인가 보다. 대선 자금을 김대중(DJ), 김영삼(YS) 후보 중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놓고 순양그룹 사람들이 고민에 빠졌다. 비호감이 적은 후보 YS다, 직선제를 끌어낸 DJ다, 둘이 단일화만 되면 노태우는 절대 못 이긴다 등 옥신각신이 펼쳐진다. 진도준은 자기 같으면 노태우에게 대선자금을 걸겠노라고 불쑥 끼어든다. DJ와 YS는 서로 욕심이 나서 양보 못 할 것이고 단일화 시도는 깨질 것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어 TV에선 단일화 결렬 뉴스가 나오고 어른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드라마 소재로 쓰일 정도로, 과연 정치란 예측이 어려운 것이구나 싶어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6·3 대선이 8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보수 진영 후보 단일화 이슈로 선거판이 뜨겁다. 정치권에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지지율 합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율에 맞먹을 때쯤, 단일화 여론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일찌감치 예견한 바 있다.

역대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 단일화는 '핫이슈'였다. 그중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단일화는 대체로 3차례를 꼽는다.

첫 번째는 19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자민련) 후보 단일화다. 호남과 충청 두 지역의 거물이 손을 잡고 'DJP 연합'을 탄생시켰다. DJ가 대선후보로 나서는 대신, JP에게는 공동 정권의 국무총리와 조각권을 보장하는 합의를 통해 단일화가 이뤄졌다. 결국 DJ는 이회창 후보를 꺾었고, 이는 헌정사상 야권 단일화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사례로 꼽힌다.

두 번째는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국민통합21) 후보의 단일화 성공이다. 노 후보는 '기득권 청산'을 내세워 '노풍(盧風)'을 일으켰지만, 정 후보도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으로서 월드컵 열풍을 등에 업고 정치적으로 급부상했다. 대선 전날 밤 정몽준 후보가 지지 철회를 선언하는 돌발 악재에도 결과적으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이회창 대세론을 꺾었다.

세 번째는 2022년 20대 대선에서 윤석열(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국민의당) 후보의 단일화다. 수차례 실무 협상 결렬 등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었지만, 대선 투표 6일 전 극적으로 단일화에 성공했고 대선 승리로 이어졌다.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초접전 끝에 신승을 거뒀다는 점에서, 단일화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6·3 대선 막판, 김문수·이준석 단일화 향방은 어떻게 될까. 보수 진영에선 사전투표일 전인 28일까지를 단일화 데드라인으로 제시하며 연일 군불을 때고 있다. 반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측은 이재명 승리를 돕는 것이라며 딱 잘라 거절하고 있다. 과연 1+1은 최소 2 이상이 될까.

정치공학적인 얘기는 잠시 접어 두자. 민주당의 사법부 흔들기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통령이 되면 재판을 정지시키고, 유죄 판결한 대법원장 특검법도 추진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비(非)법조인을 대법관으로 임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까지 추진하고 있다. 한 사람을 위한 '방탄 입법'이다. 대다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걱정하는 일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단일화 협력을 서둘러야 한다. '오늘 안 되는 게 내일 되는 것'이 정치라고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