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김교영] 드라마 '김 부장 이야기'

입력 2025-12-02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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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대한민국 사람들이 제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곳이 직장입니다. 초중고, 대학 입시 거치면서 체화(體化)된 경쟁 DNA가 아주 완전히 꽃을 피우는 곳이거든요." 중년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았던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 나온 대사다. 한국 사회를 이렇게 압축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니, 작가의 내공이 부럽다.

이 드라마는 온갖 처세술과 영업력으로 대기업 부장에 오른 50대 김낙수(류승룡 분)의 이야기다. 임원 승진에서 떨어지고, 좌천(左遷)과 희망퇴직을 거치면서 '이불(회사) 밖 세계'로 나온 김 부장의 고군분투(孤軍奮鬪)를 다뤘다. 드라마는 승진 경쟁, 사내 정치, 살벌한 영업 현장, 희망퇴직 압박 등 직장인의 현실을 짠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렸다. 퇴직 후 김낙수가 겪는 상가 투자 실패, 대리운전·세차장 일은 험난한 '인생 2막'의 현실을 보여 준다.

'김 부장 이야기'는 잘 만든 '중년의 서사(敍事)'다. 지금 세상은 어떤가. 기업들은 저성장 여파로 인력을 줄이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은 여기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직장인들의 상당수가 법정(法定) 정년을 채우지 못한다.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의 현실은 서글프다. 경험과 전문성은 쓸 데가 없다. 평생 사무직에 종사했던 사람이 경비원, 대리기사, 택배기사로 일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폐지를 줍는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37.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다. 공적이전소득 비중(OECD 평균 57.3%)은 30%다. 이는 소득의 70%를 스스로 벌어서 마련하고 있다는 의미다. 공적연금의 취약성(脆弱性)을 드러내는 수치다.

'서울 자가(自家)' '대기업 부장'은 성공의 상징이다. 김낙수는 그런 자존감으로 살았던 인물이다. 하나, 어찌 꽃길만 있겠나. 인생 여정(旅程)에는 가시밭길, 자갈길, 진창길 천지다. 술 취해 무작정 뛰던 김낙수는 지난 삶을 떠올린다. 무엇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는지, 정말로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김낙수는 알량한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과거의 김 부장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며 작별을 알린다. 스스로 짊어진 굴레를 벗고, 진정한 인생 2막에 도전한다. 드라마는 이 시대의 수많은 김 부장에게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