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유변] 비급여 관리 논의, 환자 아닌 보험사를 위한 정책이어서는 안 된다

입력 2026-03-11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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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혁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곽재혁신경과의원 원장)
곽재혁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곽재혁신경과의원 원장)

최근 정부가 도수치료를 포함한 일부 비급여 항목을 '관리급여' 형태로 건강보험 체계 안에서 관리하겠다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의료계와 사회적 논의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도수치료는 그동안 과잉 진료 논란과 실손보험 청구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고, 일정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는 정책 방향이 과연 환자 중심의 의료정책인지, 아니면 실손보험 시장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책인지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도수치료 자체가 불필요한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도수치료는 근골격계 질환 환자에게 수술이나 약물치료 이전 단계에서 통증을 완화하고 기능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치료 방법 중 하나다. 만성 요통이나 경추·견관절 질환, 스포츠 손상 등 다양한 질환에서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실제로 도움을 주고 있다.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은 도수치료가 적절히 활용될 경우 분명한 치료적 이익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일부 영역에서 나타난 과잉 이용 현상을 이유로 전체 의료행위를 획일적으로 규제하려는 접근 방식이다. 의료는 환자의 상태와 질환의 특성에 따라 맞춤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관리급여 방식이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게 될 경우 결국 필요한 환자들까지 치료 기회를 제한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환자 중심 의료라는 원칙과도 맞지 않는다. 비급여 의료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급여는 단순히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료행위가 아니라 의료 발전과 환자 선택권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의료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모든 의료행위를 즉시 건강보험 체계 안에 포함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급여 영역은 새로운 치료기술과 다양한 진료 방식이 의료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해 왔다.

도수치료 이용 증가의 배경 역시 보다 균형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과잉 이용의 원인을 의료기관의 진료 행태에서만 찾으려 하지만 실손보험 구조 역시 중요한 영향을 미쳐 왔다. 낮은 본인부담 구조를 가진 실손보험 상품은 의료 이용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했고 보험사 역시 이러한 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하며 시장을 확대해 왔다. 결국 현재의 문제는 의료기관만의 책임이 아니라 실손보험 시장 구조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최근의 정책 논의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 채 의료기관 규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실손보험사의 재정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보험사가 설계하고 판매한 상품 구조에서 발생한 문제의 비용을 의료기관과 환자가 대신 부담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된다.

최근 도입이 논의되는 5세대 실손보험 역시 환자 부담 증가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급여 외래 진료에서 실손보험 자기부담률을 건강보험 본인부담률과 연동하도록 설계되면서 환자가 실제로 부담해야 할 의료비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비응급 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 외래를 이용할 경우 평균 진료비 약 22만 원 중 기존에는 약 4만 원 정도만 부담하면 되었지만, 제도 변경 이후에는 환자 부담이 10만 원 이상으로 증가할 수 있다. 대형병원 쏠림을 줄이기 위한 취지가 있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야간이나 주말에 진료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환자들이 높은 비용을 감수하고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보험사의 지급 부담은 줄어드는 반면 환자의 의료비 부담은 커지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환자들에게 혼란과 부담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많은 국민들은 실손보험을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안전망으로 인식하며 보험료를 납부해 왔다. 그러나 제도 변화로 인해 실제 의료비 부담이 오히려 증가한다면 제도에 대한 신뢰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의료정책은 무엇보다 환자의 관점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실손보험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환자와 의료현장의 부담을 키우는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비급여 관리 역시 보험사의 손실을 줄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환자 보호와 의료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안심하고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의료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곽재혁 대구광역시 의사회 홍보이사, 곽재혁신경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