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보기에는 '이건 아니다' 싶은 선택도 당사자(當事者) 입장에서는 합리적 선택인 경우가 많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시대에 자식을 셋, 넷, 다섯을 낳은 것도 본인들로서는 합리적 선택이었고, '이러다 나라 망한다'며 출산을 적극 장려함에도 자식을 낳지 않는 것 또한 본인들로서는 합리적 선택이다. 개인의 이 합리적 선택을 향해 공공(公共)이 '아이를 많이 낳자'고 외치는 것은 공허(空虛)하다.
출산율은 거대한 흐름이다. 반짝 지원이나 사회적 캠페인으로 도도한 흐름을 막기는 어렵다. 전쟁·재난·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 일자리를 비롯한 경제적 안정, 개인적 소망, 개인의 가족사, 가족의 사회적 의미 등 그야말로 '만 가지 요소'가 반영된 흐름이 출산율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쏟아 낸다. 돌봄 지원을 확대하고,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부모급여·아동수당을 지급한다. 셋째를 출산하면 1천만원을 지급하는 군(郡)도 있다. 우리나라는 2002년 이후 출산율 제고를 위해 약 400조원을 투입했지만 저출산을 막지 못했다.
돈을 퍼부어도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정책과 예산이 출산율 그 자체를 겨냥하기 때문이다. 앞서 밝혔듯 출산율은 '만 가지 요소'의 결과물인데, 출산·보육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펼치니 실효성(實效性)이 낮은 것이다. 주가(株價)를 끌어올리기 위한 각종 정책들(부동산 투자 억제·배당 확대 등)이 장기적으로 주가 상승을 견인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경제 성장의 결과물로 주가가 상승해야 일정한 추세(趨勢)가 되지,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봐야 흐름이 되지 못한다.
정책 초점을 '출산과 육아'에서 '좋은 일자리'로 옮겨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가 적고, 그걸 얻기 위해 피 터지는 경쟁을 해야 하는 사회에서 출산지원금과 아동수당을 쏟아부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우리나라 출산 지원책은 마치 밑 빠진 독에서 빠져나가는 물보다 더 많은 물을 들이부어 독을 채우겠다는 것만큼 무모해 보인다.
양질의 일자리는 어떻게 나오는가? 교육 과정이 바뀌어야 한다.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교과서에 나와 있는 정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답하는 법'을 가르치고 시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쓸모 있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개인의 재능'을 개발하는 쪽으로 전환하자는 말이다. 입시(入試)도 그렇게 바꿔야 한다.
정답을 빨리 찾는 방식의 교육은 '일정한 양식을 갖춘 시민'을 양성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 추격 국가로서는 효율적이나 선도국(先導國)으로 도약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나라에 원천 기술이 턱없이 부족한 큰 원인 중 하나가 선생님이 묻고 학생이 답하는 교육과 그 성적표로 일자리를 나누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교육 초점이 도전 분야를 늘려서 다양한 일등이 나오도록 하는 데 맞춰져야 하는데, 분야는 늘리지 않고 순위만 매기는 것이다. 자녀를 덜 낳는 것이 개인에게 합리적인 이 환경은 그대로 둔 채, '많이 낳자'는 캠페인으로 출산율을 높이기는 어렵다.
출산율을 높일 환경과 조건 변화에는 많은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다.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예산을 부모급여·아동수당 등에 쓸 게 아니라 저출산에 따른 위기(고령 인구·일자리 불일치·국민연금 고갈 등)를 줄이는 대책에 투입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