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수희 연출의 전작인 〈아들에게〉 이후, 연출 미학의 완숙함을 기대했던 연극 〈수성다방〉( 작 구두리 / 연출 김수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은, 결론적으로 '한국 사회 철거'라는 물리적 사건을 둘러싼 시대의 기억, 수성다방과 을지로·청계천 골목의 역사, 극중 인물 박복자의 여성 삶 등 사회적 감정의 지층을 섬세하게 파고들지 못했고, 배우들의 캐릭터와 연기만 도드라져 보였다. 서사는 극의 심층보다 비대하고, 연출적인 재료는 맥락 없는 판타지 설정만으로 과한 결론을 맺는다. 연극은 7080년대 수성다방의 역사성과 을지로·청계천 골목의 재개발 철거 현장이 현재 시간과 중첩되는데, 그 시간의 연결을 복자의 기억을 중심으로 과거-현재가 연결되는 설정이다. 죽은 자도 살아나고, 7080년대로 돌아가 계약서 한 장 없이 복자가 수성다방을 건물주 이말순에게 속아 인수하기로 한 날부터 복자의 회상이 시간여행과 판타지로 재현되는 구조다.

◆ 청계천 을지로 재개발 공간의 현재성과 기억
현재 시간에는 재개발에도 불구하고 수성다방과 평생 살아온 을지로 골목을 지키려는 복자,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은 박사, 재개발로 잊혀져 가는 골목 도심에 관심이 많은 작가, 지구의 종말로 더 이상 지구엔 미래가 없다며 우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느님을 광신적으로 믿는 청년 등이 극중 인물이다. 기둥서방의 폭력으로부터 죽은 얼굴마담 최지숙(이진경 분)과 복자(남권아 분), 이말년(홍성경 분)의 계약 당시부터 인연이 얽힌 과거 시간 여행이 극의 한 축이고, 배경은 철거를 앞두고 있는 현재 시점이다. 여기에 재개발로 인한 한국 사회 공화국을 풍자하듯, 지구의 종말론을 외치던 청년은 우주론을 펼치며 상상의 환상들이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웹툰 이미지로 수성다방 유리창에 펼쳐지기도 하고, 그 사이 청계천·을지로 골목 아저씨의 복자를 향한 달콤한 사랑 이야기와 광신도 청년의 이야기가 웃음 코드로 그려진다.
한 인물이 공간의 역사성으로 내재하는 기억과 시간, 아픔 등을 서사적 전환의 매개체로 전복시키는 기능으로 활용되는데, 대체적으로 희곡이 이러한 설정 구도라면 연출에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 재개발 철거 현장과 사회 문제의 현상을 파헤치거나, 그 기억의 층위에 있는 극중 인물의 기억의 편린들과 아픔을 재현하거나. 대체적으로 이러한 기본 설정 구도에서 시간들의 층위들이 극중 인물의 기억의 시간들과 무대로 겹쳐지는 정도다. 이 정도의 보편적인 재개발 철거 현장을 지켜온 아픔의 서사는 익숙한 통속적 소재성을 뛰어넘기 위해 연출은 멜로적인 구도, 코미디적인 포인트, 웹툰적인 전경, 사실적인 현실감, 비극적인 아픔, 재개발 철거 현장의 사회성 등 모든 요소를 서사에 버무리는 총체적 장르로 확장한다. 그리고 복자의 기억 속에 내재된 과거와 죽음 이후를 만화적 판타지 장면으로 처리한다.
연극은 그 시간을, 때로는 복자의 기억으로부터 재현되는 사실적 회상으로 보여주다가도, 그 틈에서 웹툰 전경처럼 철거반들이 나타나 벽이 부서지기도 하고, 무너진 다방 벽 속에서 드러나는 자개장 나무상자가 떨어진다. 수성다방을 남편과 지켜온 박복자의 과거 기억이 봉인된 서랍처럼, 그 안에는 청계천·을지로 골목을 악착같이 지켜왔던 지난날의 잊혔던 감정, 지숙을 지켜내지 못한 트라우마, 수성다방의 역사성의 파편이 담겨 있다. 현실과 회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전환 장면이다. 이 정도는 텍스트의 서사를 심층시키는 설정이다. 그 이후부터 무대 분위기는 달라진다. 다시 지숙의 과거가 펼쳐지기도 하고, 지숙과 복자, 이말년의 과거 시간들이 재현되며 극은 마지막 허들을 넘는다. 평생 수성다방을 지켜온 복자 남편의 죽음, 노파 이말년의 건물에 대한 욕망이 드러난 후, 복자의 죽음이 스며들고 고단한 삶을 지켜온 복자는 마지막 장면에서 '여왕'으로 만들어지는 동화적 판타지로 연결된다. 철거 문제를 다루고 있는 현실 문제와, 수성다방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복자의 삶은 남편의 죽음 이후 청계천·을지로 골목을 지켜온 그녀의 삶과 연결된다. 연극은 복자를 '여왕'으로 즉위시키는 동화적 판타지로 끝을 맺는다.

◆ 판타지의 허들을 넘지 못한 재개발
재건축 현장을 아시바 파이프로 연결해 무대 구조를 세운 철거물 2층 높이에서, 그동안 복자를 중심으로 을지로 골목을 지켜온 인물들은 마치 다방 감정노동자들의 삶의 통증을 위로하듯 복자의 죽음을 '여왕'이라는 형상으로 보상한다. 극의 리얼리티 구조를 전복하는 '여왕 즉위' 판타지 설정은, 복자의 트라우마, 억압된 기억, 지숙의 삶과 아픔, 침묵된 시대의 감정노동, 그리고 생수통을 날라가며 커피 한 잔을 팔고 수성다방을 지켜온 복자의 고단한 생애, 재개발로 사라지는 청계천·을지로 골목 등 가장 낮은 삶을 살아온 여성을 '시대의 여왕'으로 헌정하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음에도 맥락 없는 설정의 건너뛰기는 황당함을 남긴다. 판타지는 무대에서 잘못 쓰이면 모호해질 수 있는 '독'이 되고, 연출적으로 잘 풀어내면 연극적 환상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연극 〈수성다방〉은 총체적인 장르가 다결합되어, 희극도, 비극도, 리얼리티도, 동화적 판타지도 모두 녹여내려 했지만, 그것들이 재개발을 앞둔 역사적 공간인 '수성다방'에 온전히 스며들지 못했다. 125분은 너무 과했고, 설득되지 못한 맥락들이 많았다. 결국 동화 판타지의 작가적 설정은 이해되나, 이 구조를 동일 연출이 그대로 공연하면서 과잉이 비대해졌다. 재미있는 요소들과 설정들이 많은데도 아쉽다. 결국 남는 것은 극중 인물로 분한 배우들의 캐릭터와 연기다. 남권아, 이진경, 홍성경, 임형택, 청년 역할(안병택) 등 배우들은 캐릭터 연기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연극 <수성다방>의 장점이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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