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김진만] 포항지진과 국가의 책무·신뢰성 회복

입력 2025-05-18 17:09:42 수정 2025-05-18 19:20:38

포항지진, 지열발전 기술개발사업으로 인한 인재(人災)
1심은 국가 책임 인정, 2심은 과실 입증 안돼 혼선
정부 책임 인정,진정한 사과,실질적인 배상대책 마련해야

김진만 동부지역취재본부장
김진만 동부지역취재본부장

경북 포항 시민들이 최근 법원의 판결 하나로 큰 충격과 상실감에 빠져 있다.

대구고법 제1민사부는 지난 13일 경북 포항 촉발지진 피해자 111명이 국가 등을 상대로 낸 지진 피해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기각 판결을 내렸다.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1심을 완전히 뒤집은 판결의 여파다.

포항 시민들은 2017년 11월과 이듬해 2월 지역에 두 번의 큰 지진이 발생하고, 이후 100회가 넘는 여진이 발생하면서 많은 재산 피해와 함께 지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정부조사연구단은 포항지진의 발생 원인이 국책사업인 지열발전소의 시추에 의해 촉발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또 감사원 감사에선 안전관리 대책 부실 등의 위법·부당 행위가 밝혀졌다. 명백한 인재(人災)로 규정한 것이다.

국무총리 소속 포항지진진상조사위원회는 지진 위험성 분석 및 대응 조치의 미흡함을 지적했다. 이를 바탕으로 포항지진피해구제법까지 제정·공포됐지만 시민들이 입은 피해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이후 포항 시민 일부가 포항지진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국가의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판결을 해 포항 시민들의 손을 들어 줬다. 당시 소송에 참여한 시민 1명당 200만~300만원을 배상하도록 명령했다.

1심 판결 이후 손해배상청구소송에 참여한 포항 시민이 전체 인구의 96%(49만9천881명)에 달했고, 승소할 경우 전체 배상금이 1조5천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등 국내 사법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집단소송으로 기록됐다.

포항 시민들은 이 소송을 통해 단순히 배상금을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다. 국책사업 실패에 대해 국가로부터 진정한 사과와 책임지는 자세를 바라고, 지진으로 인한 고통을 온전히 치유받아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와 희망은 2심 판결로 무너졌다. 재판부는 민사상 손해배상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원고들이 제시한 자료만으로는 지열발전 '관련 기관'의 과실로 인해 포항지진이 촉발됐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내용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원고 기각 판결을 내렸다. 정부가 법률적 책임이 없다고 본 것이다.

1심 판결이 뒤집힌 항소심 판결 직후 포항시와 포항시의회, 시민들은 분노하며 강력 반발했다. 정부가 지열발전 사업과 지진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상황에서 이번 항소심 판결은 시민들의 상식과 법 감정에서 크게 벗어난 결정이라고 주장하며 시민 총궐기대회를 추진하겠다고 하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포항 시민들은 이제 대법원에서 지진 피해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되길 고대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다. 포항지진 소송을 지켜보면서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포항지진이 인재로 드러난 충격 속에 정부가 피해 보상과 책임 소재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을 자초한 셈이다.

정부는 각종 조사를 통해 입증된 포항 촉발지진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와 함께 실질적인 배상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특히 국책사업의 경우 제2의 포항지진 같은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고 신뢰성을 확보하려면 정책 결정 과정에서 투명성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타당성 검토, 문제 발생 시 신속한 대응 및 책임 이행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