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 따라 떠나는 익산·임실 역사·치즈 기행

입력 2025-05-12 14:40:10 수정 2025-05-12 15:56:04

인구감소 지역 여행하는 코레일' 지역사랑 철도여행'
세계문화유산 백제 문화·전통 다도 체험 '익산'
신부님의 헌신…'치즈'로 일으킨 지역 경제 '임실'

지난 1일 조치원역에 도착한
지난 1일 조치원역에 도착한 '지역사랑철도여행' 관광열차 모습.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인구 감소가 뚜렷한 가운데, 여행객 유치를 통한 생활 인구 확대에 각 지역이 힘을 쏟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지난해 8월부터 중앙정부 부처와 지자체 등과 협약을 맺고, 평소에 가보기 쉽지 않은 지역을 열차로 연결해 각지의 관광·역사 명소를 알뜰하게 둘러볼 수 있는 '지역사랑 철도여행'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지역 관광객 유치를 통한 생활 인구 확대 일환으로 기획된 코레일의 '지역사랑 철도여행' 상품은 33개 지자체와 협업으로 탑승객에게 관광지 입장료·지역 농산물 할인, 교통비 50% 할인 등 혜택을 준다. 지난 3월까지 8개월간 8만635명이 이 상품을 이용했다.

5월 연휴를 앞둔 지난 1일과 2일, 전북 익산과 임실 등지를 방문하는 관광열차를 탑승했다. 첫날 여행은 아침 9시 서울역에서 관광열차를 타고 조치원과 서대전을 거쳐 익산역을 향하는 여정으로 시작됐다.

서울역을 출발한 기차는 3시간40여분간 이동해 익산역에 도착했다.

지난 1일 전북 익산시 금마면에 위치한 익산 백제문화체험관에서 관광객들이 다도체험을 하고 있다. 차 한 잔으로 아침 일찍부터 이어진 이동으로 바빴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지난 1일 전북 익산시 금마면에 위치한 익산 백제문화체험관에서 관광객들이 다도체험을 하고 있다. 차 한 잔으로 아침 일찍부터 이어진 이동으로 바빴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전북 익산시 금마면에 위치한 익산 백제문화체험관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사전예약을 통해 백제 복식, 다도 체험을 각각 경험할 수 있다.

관광객들은 각기 백제 복식을 골라 입고, 2층에서 다도를 체험하거나 가까이에 있는 미륵사지와 국립익산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다.

복식을 골라 입은 관광객들은 자신이 입은 옷이 16품 말단 관직자의 옷이라거나, 선화공주의 옷이라는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듣고 함박웃음 꽃이 피기도 했다.

이어진 다도 체험은 주인이 마주 앉은 손님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는 배려 그 자체였다.

다도는 차상보를 걷는 것에서부터 다관과 찻잔 예열하기, 다관에 차를 넣고 차를 우려서 따르기, 다관과 찻잔을 쥐는 방법, 찻잔을 손님 앞에 살며시 밀어주는 배려까지 세심하기 이를 없었다.

이날 마신 차는 어린 녹차잎인 세작이었다. 처음 물을 내렸을 때 부드럽고 깔끔한 맛이었지만, 거듭 물을 내릴수록 진한 맛이 잎에서 우러나 입안에 풍미가 향긋하게 맴돌았다.

아침 일찍부터 이어진 이동으로 바빴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1일 전북 익산시 국립익산박물관 입구 모습. 지면보다 낮은 곳에 주요 시설이 모두 지어졌다. 박물관 입구로 들어가는 회랑을 따라 걸어가면 점점 지면 위의 것들이 사라진다. 이민호 lmh@imaeil.com
1일 전북 익산시 국립익산박물관 입구 모습. 지면보다 낮은 곳에 주요 시설이 모두 지어졌다. 박물관 입구로 들어가는 회랑을 따라 걸어가면 점점 지면 위의 것들이 사라진다. 이민호 lmh@imaeil.com

찻잔을 내려놓고 국립익산박물관과 미륵사지 탐방이 이어졌다. 국립익산박물관은 지면보다 낮은 곳에 주요 시설이 모두 지어졌다. 박물관 입구로 들어가는 회랑을 따라 걸어가면 점점 지면 위의 것들이 사라진다.

서은숙 익산시 문화관광해설사는 "박물관은 땅 위로 높게 솟아오르기보다, 땅 밑으로 숨어 미륵사지의 신비로움을 헤치지 않고 살려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 현관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미륵사에 존재했다는 목탑의 모형이다. 미륵사에는 3개의 탑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 가운데에 이 목탑이 있었단다.

미륵산 기슭에 위치한 미륵사는 백제 무왕(639년) 때 창건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2015년 유네스코는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는데, 익산에서는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목록에 올랐다.

왕궁리 유적은 무왕이 지은 궁궐 유적으로 현재는 왕궁리 5층 석탑(국보)이 남아 있다. 1980년 발굴이 시작돼 왕궁 내부 시설과 외곽 경계, 유구와 유물이 잇달아 발견됐다.

남에서 북으로 500여미터에 달하며 생활 공간과 후원 등으로 구분됐다. 고대의 정원과 공방 터, 대형 화장실이 발견된 점도 재미난 부분이었다.

왕궁리 5층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박물관에서 꼭 보고 가야 할 유물이다.

왕궁리 유적, 왕궁리 5층 석탑(국보)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금동제 합(오른쪽) 안에 연꽃 봉오리모양의 마개가 덮인 녹색 유리사리병(왼쪽). 연꽃 봉오리 모양 마개와 사리병을 받친 금제 연꽃무늬 대좌의 정교함, 표면에 세밀하게 연꽃을 세긴 금제 사리함 등이 백제 문화 수준을 보여준다.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왕궁리 유적, 왕궁리 5층 석탑(국보)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금동제 합(오른쪽) 안에 연꽃 봉오리모양의 마개가 덮인 녹색 유리사리병(왼쪽). 연꽃 봉오리 모양 마개와 사리병을 받친 금제 연꽃무늬 대좌의 정교함, 표면에 세밀하게 연꽃을 세긴 금제 사리함 등이 백제 문화 수준을 보여준다.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1965년 석탑 보수 중 발견된 유물로 금동여래입상, 불교 의식에 사용된 청동요령, 금동제 합 안에 연꽃 봉오리모양의 마개가 덮인 녹색 유리사리병, 금강경의 내용을 19장의 금판에 새겨 책처럼 2개의 금줄로 묶은 은제도금 금강경판이 발견됐다.

연꽃 봉오리 모양 마개와 사리병을 받친 금제 연꽃무늬 대좌의 정교함, 표면에 세밀하게 연꽃을 세긴 금제 사리함 등은 그 존재 자체로 빠져들게 하는 신묘한 매력이 있었다.

금동여래입상은 광배를 배경 선 모습인데, 왼손은 아래로 오른손은 펼친 손 모양은 '시무외여원인'으로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의미가 있다.

미륵사지실로 이동하면 2009년 미륵사지석탑 해체 조사 중 발견된 사리장엄이 있다. 사리병과 금제사리봉영기, 금동사리외호, 금동사리내호 등이 발견됐다.

2015년 유네스코는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미륵사지 복원 모형. 백제 무왕이 639년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는 미륵사는 가운데 높은 목탑, 좌우로 석탑이 선 3탑 3금당 양식으로 다른 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2015년 유네스코는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미륵사지 복원 모형. 백제 무왕이 639년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는 미륵사는 가운데 높은 목탑, 좌우로 석탑이 선 3탑 3금당 양식으로 다른 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2009년 미륵사지석탑 해체조사 중 발견된 사리장엄 중 금제사리봉영기. 얇은 금판에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사찰을 창건하고 기해년(己亥年, 639)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문구가 적혔다.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2009년 미륵사지석탑 해체조사 중 발견된 사리장엄 중 금제사리봉영기. 얇은 금판에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사찰을 창건하고 기해년(己亥年, 639)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문구가 적혔다.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금제사리봉영기에는 얇은 금판에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사찰을 창건하고 기해년(己亥年, 639)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문구가 적혔다.

이 봉영기가 발견되기 전까지 삼국유사에 나오는 서동 설화를 통해 무왕이 선화공주와 미륵사를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와 다른 내용이 나오자 모두가 놀라기도 했다.

서은숙 해설사는 "선화공주가 먼저 목탑을 봉양하고, 훗날 석탑을 세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고 했다.

지금은 미륵사지 서쪽 석탑과 복원된 동쪽 석탑, 미륵사지 당간지주, 절터가 남아 있다.

박물관을 나서 지상으로 올라오자, 눈앞에 비가 그치고 안개가 가득 낀 미륵산 아래 푸른 잔디밭이 펼쳐졌다. 서쪽 석탑은 백제 문화가 번성하던 그 시대를 상상하게 했다.

박물관을 나서 지상으로 올라오자, 눈 앞에 안개가 가득 낀 미륵산 아래 푸른 잔디밭이 펼쳐졌다. 지금은 미륵사지 서쪽 석탑(왼쪽)과 복원된 동쪽 석탑(오른쪽), 미륵사지 당간지주(가운데), 절터가 남아 있다.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박물관을 나서 지상으로 올라오자, 눈 앞에 안개가 가득 낀 미륵산 아래 푸른 잔디밭이 펼쳐졌다. 지금은 미륵사지 서쪽 석탑(왼쪽)과 복원된 동쪽 석탑(오른쪽), 미륵사지 당간지주(가운데), 절터가 남아 있다.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예전부터 미륵사지는 기운이 강해 구름도 쉬어간다는 말이 있다는 데 딱 그 모습이었다.

이윤리 익산시 문화관광사업과장은 "익산시는 세계문화유산이 2곳이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볼거리들이 숨어 있는 곳"이라며 "지난해 500만명 관광객 유치를 넘어 1천만명 유치를 목표로 다양한 관광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이튿날 관광열차는 임실군으로 향했다. 임실군에서 조성한 성수산 왕의숲 생태관광지가 목적지였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산골에 관광안내소가 있고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계곡변을 따라 어린이 놀이터와 잔디밭, 캠핑장 등이 자리했다.

성수산 왕의숲 생태관광지. 계곡변을 따라 어린이 놀이터와 잔디밭, 캠핑장 등이 자리한다. 조선 건국 설화, 아름다운 자연이 어울어진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최적의 휴양림이다.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성수산 왕의숲 생태관광지. 계곡변을 따라 어린이 놀이터와 잔디밭, 캠핑장 등이 자리한다. 조선 건국 설화, 아름다운 자연이 어울어진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최적의 휴양림이다.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관광안내소에서 1시간가량 걸어 오르면 산기슭에 자리한 상이암을 만날 수 있다. 일종의 건국 설화를 품은 곳인데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와 대격전을 벌인 황산대첩을 앞두고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던 중 '앞으로 네가 왕이 된다'는 소리를 하늘로부터 듣고 '상이암'이 되었다고 한다.

주변 9개 능선이 한곳으로 모여드는 형국이라 구룡쟁주(九龍爭珠)라고도 하는데 그 가운데 바위 봉우리가 여의봉(如意峰)이다.

무장(武將)의 설화로 소위 '기도발' 좋은 곳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군인이나 선거 출마자들이 출세를 기원하는 기도 터로 유명하단다.

성수산 왕의숲 자연휴양림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메타세쿼이아 숲을 활용한 산림욕장이 여러군데 조성돼 있다.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성수산 왕의숲 자연휴양림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메타세쿼이아 숲을 활용한 산림욕장이 여러군데 조성돼 있다.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자연적으로 형성된 메타세쿼이아 숲 사이에 평상들이 드문드문 놓여 있어 산림욕을 즐기기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캠핑장 인근에는 숙소나 계곡 물놀이 장소들도 잘 갖춰져 있었다.

강명자 임실 문화관광해설자는 "최근에는 1.15㎞ 2개 구간에 황토를 깔아 맨발 걷기 길도 조성됐다"며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수량이 풍부하고, 자연환경도 깨끗한 천혜의 휴양림"이라고 자랑했다.

성수산에서 차로 30분쯤 이동한 곳에 임실 치즈마을과 치즈테마파크가 있었다. 이곳에서 임실군에서 난 치즈를 이용한 피자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강사의 안내에 따라 쌀가루가 주재료인 반죽 위에 스트링 치즈를 올려 치즈크러스트를 만들고, 모차렐라, 체다 치즈, 불고기, 양파, 버섯 등 재료를 올렸다. 강습 시간과 피자를 굽는 시간 포함 40여분 정도 걸렸다.

임실치즈마을에서는 피자 만들기 체험도 해볼 수 있다. 강사의 안내에 따라 반죽 위에 재료를 놓으면 된다. 30~40분 정도면 피자가 완성된다.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임실치즈마을에서는 피자 만들기 체험도 해볼 수 있다. 강사의 안내에 따라 반죽 위에 재료를 놓으면 된다. 30~40분 정도면 피자가 완성된다. 이민호 기자 lmh@imaeil.com

임실에서 치즈 생산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벨기에 출신인 지정환(디디에) 신부는 1964년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왔다. 당시 임실은 인구가 14만명(현재 2만5천여명)에 달했지만, 서울 너비에 산이 대부분인 척박한 환경에서 먹고 살 방법부터 찾아야 했다.

지 신부는 선물 받은 산양 2마리를 키우면서, 산양젖을 짜 치즈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치즈 만드는 일이 처음부터 성공적이지는 않아, 실패를 거듭했다. 벨기에 현지에서 유산균을 넣어 치즈를 만드는 방법을 배워 1968년 카망베르 치즈를 시작으로 등 각종 치즈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치즈의 국내 판로를 찾기 쉽지 않았는데, 외국인들 왕래가 있는 서울 남대문 시장이나 조선호텔에 납품하면서 생산을 지속할 수 있었다.

지 신부는 임실에 낙농업을 세운 공로로 2016년 대통령 표창인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장애인 재활센터를 건립하며 장애인 인권 향상에 크게 기여한, 지 신부는 생전에 '임실 지' 씨라며 한국인으로 기억되길 원했다. 2016년 한국 국적을 얻고 3년 후인 2019년 선종했다.

임실군은 최근 인구 감소세가 심화되면서, 관광지 조성과 2015부터 시작한 임실N치즈축제를 통해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이에 지난해 888만명 관광객을 맞이한 임실군은 올해 1천만명을 목표로 한다.

코레일은 익산·임실을 비롯해 경북 안동·문경, 충북 단양, 강원 영월 등으로 떠나는 총 345개의 지역사랑 철도여행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기존의 관광열차 상품 등을 모두 포함해 지난해 철도로 여행한 승객은 총 301만1천명으로, 이들은 지역 경제에 약 8천378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1만5천926명의 취업 유발 효과를 미친 것으로 코레일은 추산했다.

송문관 코레일 여행플랫폼처 부장은 "여행 열차 이용객들의 카드비가 지역주민들보다 1.5배 높다는 통계 조사가 있다"며 "코레일은 철도 관광을 통해 방문객 확대뿐 아니라 정주 인구를 늘려 지역 경제·사회 활성화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