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은 소설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앙투아네트는,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궁으로 몰려와 빵이 없다고 하소연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는 오명을 썼다. 사실 루이 14세의 왕비 마리테레즈가 한 말이었는데도 사람들은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했다. 1788년에 큰 흉년이 들었고, 혹한에 빵값까지 치솟자 가난한 서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 찰나 타국에서 온 어린 왕비가 사치스럽고 방탕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표적으로 삼고서 단두대로 끌어올린 것이다.
어찌 보면 마리앙투아네트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격변기의 희생양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의 프랑스 국민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거대한 '빡침'을 맞닥뜨리기 일쑤이다. 밖으로 화를 분출해야 하는데 마주하기 어려운 상대라거나 그 대상이 무엇인지조차 선명하게 인지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면 스트레스 지수는 극에 달하고 마치 수명이 단축될 것만 같은 분노의 소용돌이 속으로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 허우적대야만 한다.
이럴 때 뱉으라고 있는 게 욕이다.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로 욕을 정의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측면 말고 순기능이 바로 이런 순간에 내지르는 욕설 아닐까. 특별한 서사나 의미 없이 딱 그 찰나의 순수한 감정만 전달하는 욕. 감정 이외의 어떤 사고나 가치가 혼합되지 않은 언어는, 사실 외양은 부정적이기 짝이 없지만 타들어가는 내면만은 시원하게 정화해 준다. 물론 마리앙투아네트에게 떼거리로 몰려간 사람들의 감정은 욕 몇 마디로 풀어낼 덩어리가 아니었겠지만,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모호할 때 맷집 좋은 욕이라는 언어를 앞에다 병풍처럼 세워놔도 괜찮겠다는 의미이다.
'욕'에게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저 내뱉고 난 뒤 청량한 쾌감을 느껴주면 그걸로 욕에 대한 소임을 다한 셈이다. 그래서 욕쟁이 할머니가 차려주는 음식도 송구스럽게 여기지 말고 얻어먹은 한 바가지의 욕만큼 맛있게 먹어주면 될 일이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고 대밭에 소리친 신하의 답답한 마음도 그 외침 끝에 상스러운 욕 몇 마디쯤 보탰다면 속 시원하게 풀리지 않았을까.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격분의 상황을 막을 길은 없다. 몹시 노엽고 분한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면 꾹꾹 눌러 담지 말고 거침없이 욕하기를 추천한다. 단, 호모사피엔스의 최첨단 리뉴얼 존재들이니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러면 좋겠다. 그런 후미진 장소라면 더 찰지게 튀어나올지도 모르니.
암울한 시대를 살다 간 프랑스의 하층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저마다 다채로운 욕설을 침 튀기며 내뿜는다고 상상해 본다. 명치에 꽉 막혀 있던 것들이 오장육부가 꿀렁거릴 만큼 쑥 빠져나가도록 걸판지게 욕을 뽑아냈다면, 그랬다면 오명을 쓴 30대의 왕비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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