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삼국지] 한덕수와 가후의 '처세술'

입력 2025-04-29 16:49:45 수정 2025-04-29 19:29:09

한덕수(1949-), 가후(147-223). 연합뉴스, 코에이 삼국지11
한덕수(1949-), 가후(147-223). 연합뉴스, 코에이 삼국지11

※21대 대선 기간을 맞아 대한민국 정치사 속 인물들을 삼국지정사·연의·게임·드라마·영화 등을 뒤섞어 분석해봅니다. 네이버 뉴스에서 '시사삼국지'를 검색해보세요.

가후는 나중에 삼국지정사와 삼국지연의 모두 희대의 폭군으로 기술하게 되는 동탁 휘하에서 일했다. 동탁이 죽은 후에는 남은 세력을 승계한 이각 휘하에 있었다. 삼국지연의만 아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단외가 이각의 목을 베자 그 밑에도 갔다가 다시 장수 밑으로 옮겼다.

장수의 책사가 돼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조조를 크게 2차례(완 전투와 양 전투) 무찌르는 활약을 펼친다. 조조의 심복 전위, 아들 조앙, 조카 조안민을 전사시킨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조조는 배후의 원소를 막고자 철수, 관도대전을 치르게 되고, 이에 장수와의 전쟁은 중단된다.

▶이처럼 난세에 목숨을 부지하는 처세는 물론, 더 나아가 공을 세워 핵심 인물로 대우받는 처세까지 구사한 가후는 좀 더 고차원적인 처세를 이뤄낸다.

관도대전 당시 원소는 조조의 턱 밑에 칼을 겨눈 세력인 장수에게 손을 잡자고 제안한다. 이때 가후가 원소의 사신에게 한마디 한다. "형제끼리도 서로 용납치 못하면서(원소와 원술의 반목을 가리키는 표현), 어찌 천하의 국사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형제끼리도 힘을 합치지 못하면서 남과 거사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전하라".

이에 원소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주군 장수에게 가후는 조조를 따를 것을 조언한다. 조조보다 강성한 원소는 약한 세력인 우리(장수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원소에게 열세인 조조가 우리를 더 반길 것이며, 과거 전쟁에서 패배를 안긴 악연을 이유로 조조가 거부하면 우리 역시 그를 따를 필요가 없지만, 반대로 우리를 반기면 향후 보복의 빌미가 될 수 있었던 사사로운 원한(전위, 조앙, 조안민의 죽음)을 푸는 계기가 된다고 이유를 들었다.

결국 장수는 조조에게 투항하고, 가후는 조조에게 중용된다.

이후 장수와 가후의 생애가 묘하게 대비된다. 장수는 조조의 아들 조비로부터 핍박을 받았고 이민족 정벌 과정에서 사망했다.

▶여기서 더욱더 고차원의 처세가 펼쳐진다. 가후는 자신을 알아준 조조의 세력 확장 과정에서 활약했고, 조조의 말년에는 후계 문제에 대해서도 조언하는데, 셋째(원상)를 총애한 원소 세력과 차남(유종)에게 권력을 준 유표 세력 둘 다 내분 탓에 멸망한 전례를 들어 장남 조비를 지목해 관철시킨다.

이 정도면 조비 휘하에서 더욱 실세가 됐을 법한데, 가후는 스스로 그 길을 피했다. 몸조심을 했다. 다른 고위직 가문과 사돈을 맺지 않고, 군권 없는 태위라는 벼슬에 머무르며 조용히 지냈다. 그러다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난세에 장수한데다 꾸준히 중용됐고 자기 가문도 지켰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능력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역대 여러 정부에서 중용됐다. 1970년 행정고등고시 합격을 통해 공직에 입문, 경제관료로 두각을 나타냈다. 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 사무관부터 이사관까지 승진했다.

여기까지는 여느 월급쟁이 공무원의 삶이었다. 언론 보도에 중요하게 날 정도로 한덕수 대행이 언급되기 시작한 건 김영삼 정부 때부터다. 그의 경제관료 커리어는 통상산업부 차관 재임 중 맞닥뜨린 IMF 사태 수습으로 연결됐다.

이어 김대중 정부 땐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아 한미FTA를 추진했고,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까지 지내지만, 한중 마늘 협상 파문으로 경질되는 곤혹도 맛본다.

하지만 그게 커리어의 끝은 아니었다. 한덕수 대행은 다음 노무현 정부 때 국무조정실장을 맡더니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 이어 국무총리에 이른다.

정권이 교체되면 으레 직전 정권 사람은 쓰지 않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덕수 대행은 이명박 정부 초대 주미대사를 맡았다. 한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 상대국의 새 정부 첫 대사를 말이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연이어 두문불출했기에 한덕수 대행은 그제서야 커리어가 끝난듯 했다.

가후의 말년이 떠오른다. 역적인 군주부터 군소 군주를 지나 대국의 권력자까지 종사하며 오로지 능력으로 인정받은 후, 어쩔 수 없이 정치의 영역(조조의 후계 문제)에 관여한 다음엔 그 여파가 두려워 철저히 몸을 웅크리는 태도를 취했다.

한덕수 대행은 그동안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비정파적인 이미지를 자신의 이력서에 황금 펜으로 표기해 중용됐다. 그러며 IMF를 수습하고 한미FTA를 추진하는 등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거의 유일한' 국무총리로 재임한 후 다시 이어질 선택은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주목된다. 가후와는 달리 정치의 영역을 건드린 후 뒤로 물러나기보다는 되려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서는 모양새라서다.

바로 대선 출마다.

가후의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지, 아니면 가후를 넘어설지는 한달 조금 남은 대선 기간 중 드러날 전망이다.

▶생각해 볼 문제=가후는 주군들에게 전투에서 이기고 (자신까지 포함해)살아남는 책략은 제시했지만, 천하를 다스리는 비전은 제시한 적 있는가? 한덕수 대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