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나눔, 기적 같은 선물] <4편> "내 몸보다 소중한 타인의 장기들" 생명의 숨결 불어넣는 이식 코디네이터

입력 2025-05-14 16:25:01 수정 2025-05-14 16:30:51

이식 대기 환자들 관리에 신경 바짝…검사 일정 확인하며 검진 조율
기증과 이식 언제 이뤄질지 몰라 24시간 비상 대기
장기 담는 아이스박스에 발을 대서는 안 돼…, 가벼운 미소도 유족 앞에서 절대 금지
"이식 받은 수혜자분들 물 떠놓고 제사를 지낸다는 말에 코디네이터 업무 보람"

24일 대구 계명대학교 성서동산병원에서 김민애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가 장기 기증 관련 소식을 접하고 황급히 중환자실로 향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4일 대구 계명대학교 성서동산병원에서 김민애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가 장기 기증 관련 소식을 접하고 황급히 중환자실로 향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기증자가 선물해 준 장기를 제 몸보다 더 소중히 여겼어요. 생명이 꺼져가던 환자가 건강을 되찾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 코디네이터라는 일이 그렇게나 보람찹니다."

계명대 동산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민애(37) 씨의 이야기다. 2011년 간호사로 근무했던 그는 신경외과와 응급실을 거친 뒤 2019년부터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이식 대기 환자들 케어에 24시간 초긴장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의 하루는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의 건강 상태를 살피는 일로 시작된다. 이식 수술은 기증자가 나타나면 급하게 진행된다. 이때 대기자의 몸 상태가 준비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민애 씨는 1천500여 명의 환자 검사 일정을 확인하고 필요 시 검진을 조율하고 있다.

전국 어느 병원에서든 뇌사 기증자가 나타나면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코노스)으로 보고된다. 민애 씨는 실시간으로 코노스를 통해 환자들과 적합한 기증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먼저 기증자 검사결과를 보고요. 장기에 따라 다르지만, 혈액형부터 백혈구 항원 교차 검사결과를 확인해야 해요. 다음으로 이식 가능한 상태인지 등 여러 가지 상황을 모두 고려해서 매칭을 진행합니다."

24일 대구 계명대학교 성서동산병원에서 김민애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가 뇌사자 장기 적출 완료 명단을 살펴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4일 대구 계명대학교 성서동산병원에서 김민애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가 뇌사자 장기 적출 완료 명단을 살펴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기증과 이식이 언제 성사될지 예측이 어려워서 항상 비상 대기다. 특히 당직 주간에는 24시간 호출에 대비해야 한다. 매칭이 이뤄지면 이식 대기자 상태를 확인해야 하기에, 한밤중이라도 연락을 취한다.

"한 번은 신장 이식이 가능한 환자가 있었는데 전화를 안 받아서 애가 탔어요. 어렵게 보호자와 연락이 닿아 간신히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죠."

이식을 받은 수혜자들의 건강 상담도 이어진다. 당직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동안엔 새벽에도 수시로 연락이 온다.

"장기를 받으신 분들은 면역 억제제를 꾸준히 복용해야 해요. 약을 제때 먹지 못했을 때의 대처법부터, 어떤 음식을 먹어도 되는지 등 이식 후 관리법을 많이 여쭤보세요. 이런 응대도 코디네이터의 업무 중 하나입니다."

◆ 장기가 담긴 아이스박스는 손으로만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는 뇌사자가 발생한 병원으로 직접 가서 장기를 이송해온다. 보통 장기는 60ℓ 크기의 아이스박스에 담아 오는데, 얼음까지 채워지면 성인 남성도 들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민애 씨는 후배들에게 꼭 당부하는 것이 있다. 아무리 무겁더라도 아이스박스에 발을 대서는 안 된다는 것.

"장기 적출 수술을 진행할 때 보호자에게 다른 곳에서 기다려달라고 안내해요. 하지만 가족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순간을 끝까지 지켜보고 싶어 하시죠. 아이스박스가 무거워서 발을 지렛대 삼아 들어 올리면 '내 가족의 장기를 함부로 다룬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요."

수술실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표정 관리도 중요하다. 작은 미소 하나도 유족의 눈에 띌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신입 코디네이터들에게는 '미소 금지'를 법처럼 가르치고 있다.

24일 대구 계명대학교 성서동산병원에서 김민애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가 장기 보관 아이스박스를 챙겨 수술실로 향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4일 대구 계명대학교 성서동산병원에서 김민애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가 장기 보관 아이스박스를 챙겨 수술실로 향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7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장기를 포장하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신경이 바짝 쓰인다.

"혹시 장기를 잡을 때 힘이 들어가서 멍이 들지는 않을지, 포장할 때 얼음을 많이 넣어서 얼지는 않을까, 장기를 넣는 봉지를 느슨하게 묶진 않았는지…늘 머릿속으로 점검하면서 움직여요."

장기이식에는 '허혈시간'이라는 골든타임이 있다. 혈류가 끊긴 장기를 이식받는 몸에 넣기까지의 시간으로, 장기의 생존 가능성이 결정된다. 장기별로 허용되는 시간은 다르다.

심장은 단 4시간 안에 이식이 돼야 할 정도로 응급도가 높다. 폐 6시간, 간 12시간, 췌장 14시간, 신장은 24시간 이내에 이식이 이뤄져야 한다. 기증자 병원과 수혜자 병원 간 거리가 멀수록 동선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짜느냐도 중요하다.

실제로 2021년 1월 13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적출한 심장을 서울 지역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기상 악화로 헬기 이송이 불가능해지면서 4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KTX뿐이었다. 이마저도 제시간에 출발하기 어려워 놓칠 뻔했으나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협조, 승객들의 보이지 않는 배려로 열차 운행 시간을 3분 지연 운행했다. 다행히 이식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한 생명이 삶의 기회를 다시 얻었다.

민애 씨는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으로, 수혜자들이 기증자에게 감사함을 전할 때를 꼽았다.

"수혜자 중 한 분은 자신의 이식 수술 날을 기증자의 기일로 여기며 물을 떠놓고 제사를 지낸다고 해요. 어떤 분은 기증자의 집이 동서남북 중 어느 방향인지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하셨죠. 매일 그쪽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요. 그 마음을 들을 때마다 제가 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낍니다."

24일 대구 계명대학교 성서동산병원에서 김민애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가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4일 대구 계명대학교 성서동산병원에서 김민애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가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