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열전-조두진] 싸웠다가 크게 질까 두려워 무난히 지는 쪽을 택하는 국민의힘

입력 2025-04-16 20:12:57

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운명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 악착 같은 야권과 그 지지층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대 0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심리 시작부터 속도전을 펼쳤다. 하지만 2월 25일 변론을 종결하고 38일이나 지나 선고했다. 탄핵에 찬성하는 재판관 숫자가 6명이 되지 않아 선고 기일을 빨리 잡지 못했을 것이다.

탄핵 인용 5대 기각 3 구도가 고착 상태라는 추측이 나돌자 더불어민주당은 마은혁 헌법 재판관 후보 임명을 강하게 압박했다.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해 '마은혁을 임명하지 않으면 탄핵하겠다'고 날짜를 못 박았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직무복귀하자 역시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바로 재탄핵에 들어가겠다"고 겁박(劫迫)했다. 다음 순위 국무위원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승계할 경우에도 "마은혁 재판관을 즉시 임명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따박따박 탄핵하겠다"고 공언했다.

헌법재판소를 향한 공격도 거셌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보수·중도로 분류되는 정형식, 김복형, 조한창 헌법 재판관의 실명을 콕 집어 거론하며 "을사오적의 길을 가지 말라"며 터무니 없는 말을 퍼부었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야권이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입장인 헌법재판관을 개인 문제로 협박했다는 설(說)도 파다(播多)하다. 그야말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내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이에 반해 국민의힘은 몇몇 의원들을 제외한 대부분이 대통령 탄핵심판을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심지어 자기 당 소속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인물이 그 후임 대통령이 되겠다며 대선 후보로 나서도 그러려니 한다. 나경원 의원만 이 문제를 강하게 비판한다.

▶ 흉기를 든 자에 대처하는 법

일본 센코구시대(戦国時代) 최후 승자이자 에도막부(江戸幕府)의 초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년~1616년)가 아직은 세력이 약할 때였다. 미카와(三河) 지역(지금의 아이치 현 동부)의 작은 성(城)의 성주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성 밖으로 나간 사이, 한 남자가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렸다. 이때 도쿠가와의 부하 중 한 명이 난동을 피우는 남자를 맨손으로 제압해 꽁꽁 묶었다. 사람들은 "성주님이 돌아오시면 큰 상을 내릴 것" 이라며 이구동성으로 칭찬했다.

얼마 후 성으로 돌아온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초지종을 들은 후 난동꾼을 제압한 남자를 크게 꾸짖고 성 밖으로 추방했다. 큰 상을 내릴 줄 알았던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쿠가와가 그 용감한 사나이를 꾸짖고 추방한 이유는 이랬다.

"상대가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면, 그 흉기에 맞설만한 무기를 들고 난동꾼을 제압해야 한다. 하지만 이 자는 자신의 힘과 용맹을 믿고 맨손으로 난동꾼에 맞섰다. 요행이 제압에 성공했지만 대단히 무모한 짓이었다. 자칫하면 자신이 죽거나 다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도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이런 자를 벌하지 않고 큰 상을 내린다면, 앞으로도 이런 무모한 자가 속출할 것이고, 장수들은 전투에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자신의 용맹을 믿고 돌진해 부하들을 모두 죽게 할 것이다."

▶ 싸움 발생하면 어물쩍 물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국민의힘 지도부는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에 반해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승복은 윤석열(대통령)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탄핵이 기각되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공식 천명해야 한다. 불복·저항 선언으로 위헌 릴레이를 멈춰 세우자"고 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만 대조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 심판에서 헌법재판관 8명 중 7명이 기각 또는 각하 의견을 냈다. 하지만 우리법 연구회 출신 정계선 재판관은 '파면' 의견을 고집했다. 한덕수 대행을 파면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있었나? 그럼에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당초 '탄핵 반대' 입장으로 알려졌던 보수·중도 재판관들이 다수 의견에 동참해버린 것과 대조적이다. 국민의힘과 보수·우파의 태도가 이렇다. 싸움이 한창인데, 체면·윤리·양심을 찾거나 한 대도 맞기 싫다며 물러선다. 그러니 항상 질 수밖에.

▶ 신사의 언어 VS 깡패의 주먹

한국에서 보수·우파 리더들이 여차하면 물러나고, 진보·좌파 리더들이 악착 같이 싸우는 것은 좌파 진영은 격렬하게 싸우는 이들에게 보상을 주지만, 우파 진영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좌파들은 걸핏하면 '극우' '반민족' 프레임을 씌우는 데, 이때 보수·우파 정치인들은 공격 받고 있는 동료를 돕기는커녕 '자신도 공격 받을까봐' 손절해버린다. 싸웠다가 크게 패할까봐 두려워 무난히 지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1950, 60년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허약하고, 불결했던(위생적으로) 대한민국을 이만큼 부유하고 강하고, 깨끗한 나라로 만든 것은 보수우파의 가치(더 많이 성장하자) 덕분이었지, 진보좌파의 가치(더 많이 나누어 쓰자) 덕분이 아니었다. 그러나 충돌이 발생하면 보수우파 리더들이 어물쩍 물러서니 많은 국민들이 보수우파가 '정당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오해한다. 국민 다수가 보수우파 가치의 정당성을 의심한다면 우리나라는 좌경화되기 마련이다. 나라가 쇠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외부 적보다 내부 적이 훨씬 위협적이다. 한국 좌파는 격렬한데, 우파는 안이하고 기회주의적이다. 좌파는 선동 언어로 속이는데, 우파는 논리로 설명한다. 지식인이 아닌 평범한 대중이 간단한 선동에 끌리겠나, 복잡한 논리에 끌리겠나.

흔히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싸움판에서 펜은 칼을 이기지 못하고, 신사의 언어는 깡패의 주먹을 이길 수 없다. 상대가 무기를 들면, 나도 무기를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늘 패할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도 마찬가지다.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