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 중 하나로 1929년 미국 대공황(大恐慌)을 꼽는다. 1920년대 세계 경제가 호황이던 때, 미국은 해외 투자로 눈을 돌렸고 유럽 생산기지로 독일을 택했다. 독일은 풍요를 꿈꾸며 외국 자본을 적극 끌어들이려 했다. 그런데 대공황이 터져 버렸다.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로 불린 1929년 10월 24일, 뉴욕 증시 11% 폭락을 신호탄으로 이후 3년간 주가는 90% 추락했다. 미국 등 외국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독일에선 대량 실업이 발생했고 경제는 바닥을 쳤다. 이를 기회 삼아 아돌프 히틀러는 외세 배격과 게르만 우월을 내세우며 대중을 선동해 정권을 장악했다. 세계대전 발발의 디딤돌을 대공황이 제공한 셈이다.
대공황 타개책(打開策)으로 미국 정부는 수입품 규제에 나섰다. 2만여 개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 관세를 부과하는 '스무트-할리 관세법'이 1930년 시행됐다. 유럽 국가들도 경쟁적으로 수입 관세를 높였고, 1929~1932년 국제무역은 63% 급감했다. 선후는 바뀌었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관세 조치가 대공황을 연상시키는 이유는 관세 정책 발표 직후 이틀간 미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6조6천억달러(약 9천646조원)가 증발했으며, 세계 증시도 급격히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총생산(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1930년대에 비해 훨씬 커진 만큼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回歸)는 대공황 당시보다 훨씬 큰 충격을 몰고 올 수 있다며 경고한다.
대공황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는 휴지 조각이 된 주식, 끝도 보이지 않는 무료 급식소 대기 줄, 뒷골목을 헤매는 헐벗은 어린이가 등장한다.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농부는 땅을 잃고 가족들과 함께 새 정착지를 찾아 떠나지만 어디에도 일자리는 없다.
굶주린 노동자들이 넘쳐 나니 자본가는 터무니없이 싼 임금을 제시한다. 간신히 일감을 구해도 제때 돈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도와 전기는 끊기고 우유 한 병 사 먹을 돈조차 없다. 사회적 울타리는 사라지고 가족은 붕괴한다. 1932년 겨울 뉴욕에서만 5천여 명이 영양실조로 숨졌다. 21세기에 이런 일이 벌어질 리 없다고 방심해선 곤란하다. 대공황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는 이들이 바로 미국인이고, 그들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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