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식의 페리스코프] 국가보훈체계의 허상과 개선방안

입력 2025-04-09 13:30:00 수정 2025-04-09 18:09:06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주은식
제1 연평해전, 승리했지만 잊힌 이름들…희생해야만 영웅인가

지난달 28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이 끝난 후 제1연평해전 참전장병들의 국가유공자 지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관련 내용을 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이 끝난 후 제1연평해전 참전장병들의 국가유공자 지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관련 내용을 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승리했지만 외면받은 제1연평해전의 영웅들

1999년 6월,서해 북방한계선에서 일어난 제1연평해전은 우리 해군의 전투력과 조직력을 증명한 승전이었다. 대한민국과 북한 정규군 간의 휴전 후 첫 해상 전투로 기록된 이 전투는 14분 만에 북한군 함정을 격침하고,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전투를 종결지은 일대 기념비적 사건이다. 하지만 전투에 참전했던 장병들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정당한 예우는커녕,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한 채 기억 속에서조차 소외되어 있다.

연평해전은 1998년 초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햇빛정책이라는 대북화해정책을 추진하였고 같은해 11월에 동해안에서 출발한 관광선이 장전항에 도착하여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었다. 북한은 화해협력을 하면서도 물밑으로는 잠수정을 보내다가 우리 측의 그물에 걸려 발각이 되었고 군에서는 이에 분리대응하여 사살을 하고 잠수정을 인양하여 북한에 시신을 송환하였다.

1999년 11월 해군은 연평도에 연평해전 기념전승비를 세워 교전과 승전내용을 기록했고 해군은 유공자들에게 훈포장을 수여했다. 이러한 사실은 최초에 연평해전이라고 하였다가 2002년 월드컵 대회개최 중 북한이 또다시 도발하여 참수리호 357호 사건이 재발함에 따라 제1연평해전으로 명명되었다. 그런데 최근 이 제1연평해전에 참전하였던 장병들에 대하여 국가가 해서는 안될 짓을 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내용은 제1연평해전에서 참수리 325호에 승선하여 교전의 중심에 있었던 장병 8명 모두가 국가보훈부로부터 국가유공자 '비해당'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신체에 파편상을 입거나 골절 등 신체적 외상과 정신적 외상을 겪은 장병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보훈부는 "교전 직후 진단서가 없고, 만기 전역을 했으며, 전역 후 사회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이들의 고통을 인정하지 않았다. 처음 보도를 접하고 보훈부가 처에서 부로 승격 후 보훈이 뒷걸음질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9년 6월 15일 발생한 제1연평해전
1999년 6월 15일 발생한 제1연평해전

◆보훈부의 경직된 심사행정

이는 현행 국가보훈체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첫째, 전투의 실제 상황과 정신적 외상의 복합성을 반영하지 못한 경직되고 한심한 인정 기준이다. 당시 제1연평해전은 선제 사격이 금지된 상황에서 약 10일간 북한 함정과 10m 거리에서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 진행되었다.

이는 물리적인 피해보다 훨씬 더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전투상황이었다. 일부 장병은 "북한군 정장이 무표정하게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속에서 '유언장을 쓰라'는 말을 들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보훈부는 '당시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진단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의 정신적 외상을 부정했다.

둘째,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절차 중심주의다. 1999년 당시에는 죽음이나 두려움을 겪은 후 나타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인 PTSD라는 개념조차 보편화되지 않았고, 군대 내 정신 치료에 대한 편견도 심했다. 실제로 참전자들은 "의무실에 가면 혼난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는다"는 인식 때문에 치료는커녕 상태를 알리는 것조차 꺼려야 했다. 그렇기에 지금 와서 25년 전 진단서가 없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지정을 거부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정이다.

셋째, 승전이라는 이유로 기억에서 배제된 '비극적 아이러니'다. 제1연평해전은 명백한 승리였기에, 사망자나 대규모 피해자가 없었다는 점에서 대중의 기억과 국가의 기념에서도 뒷전으로 밀려났다.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전은 '서해수호의 날'로 기념되지만, 제1연평해전은 법정기념일에서조차 빠져 있다. 해당 전투의 참전자들은 단 한 차례도 공식 초청을 받은 적이 없다. 이는 희생을 기준으로 기념과 추모하는 국가의 무의식적 차별의 결과이다.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국가의 존재이유(Raison d'être)는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이들이 '진단서 한 장' 없다는 이유로 객관적 사실이 분명함에도 외면당하는 현실은 국가보훈의 근본정신에 위배된다. 보훈심사는 형식이 아닌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제복 위에 쌓은 자유, 기억해야 하는 국가책임

이를 위해 다음같은 개선책이 보완되어야 한다.
첫째, PTSD 등 정신적 외상에 대한 '경과인정제도' 도입이다. 시간이 지난 후 확인된 PTSD도 일정한 심사를 통해 당시 전투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천안함 생존 장병들도 2021년부터야 PTSD로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제1연평해전 참전자들에게는 이러한 제도가 없었다는 점에서, 소급 적용이 가능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보훈 심사 기준의 유연성과 현실화가 필요하다. 현재의 기준은 지나치게 행정적이고 형식적이다. 전투 상황에 대한 심층면담, 당시 보고서, 참전자 간 증언 등의 종합적 판단 자료를 활용해 보다 탄력적인 심사가 가능해야 한다. 단순히 '진단서'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과도한 형식주의에 불과하다.

셋째, '승전의 의미'에 대한 국가적 재평가가 필요하다. 전쟁은 단지 희생의 정도로만 평가할 수 없다. 전략적 의미, 군사적 기여도, 장병들의 헌신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제1연평해전은 이후 북한의 해상 도발을 억제하고, 해군의 경계 태세를 강화시키는 분기점이 되었다. 이를 도외시한 채 '피해가 적었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것은 국가보훈부의 직무유기다.

넷째, '서해수호의 날' 공식 초청 대상에 제1연평해전 참전자를 포함시켜야 한다. 이는 기념일의 형평성과 상징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제1연평해전은 대한민국 해군이 휴전 이후 처음으로 전투에서 승리한 사건이며, '서해수호'의 시작점이다. 이 전투가 없는 '서해수호의 날'은 반쪽짜리 기념일이다.

국가는 제복을 입은 누군가의 피와 희생 위에 존재한다. 잊혀진 전투는 있어도 잊혀져서는 안 될 영웅이 있다. 제1연평해전 참전자들이 겪은 고통과 희생을 기억하고 예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오욕을 뒤집어 쓴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기를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는 밑거름이다. 지금이라도 보훈부는 그들에게 진정한 국가의 품격과 배려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주은식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