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김태진] 진심이 통하는 기부

입력 2025-03-30 17:56:15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2020년 초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에 대구는 '코로나 도시'라는 오명을 감당해야 했다. 서울 지역 병원 출입이 통제됐고, 문턱을 넘어도 무조건적인 PCR 검사 대상이 돼야 했다. 대구에서 왔다는 게 이유였다. 정치권에서는 희대의 실언도 나왔다. 당시 여당,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대구 봉쇄'를 언급했다. 자발적 거리 두기에 적극적이던 시민들의 모습을 기적 같다며 세계 유수의 언론도 찬탄하던 때다.

반대로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보름 동안 봉사했던 정치인도 있었다. 당시 국민의당 대표였던 '의사 안철수'였다.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도 함께한 재능 기부였다. 총선을 앞둔 야당 대표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한다면 자주 노출되고 싶은 사심이 있었다 해도 할 말 없었을 것이나 연출된 영상이나 사진은 없다시피 했다.

26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산불 피해 주민들이 있는 안동체육관부터 챙겼다. 그의 고향인 예안면민들이 대피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튿날 그는 영양과 청송에서 저돌적인 반응을 마주해야 했다. 영양에서는 "보기 싫어"라며 얼굴 앞에 옷을 휘두른 이가 있었고, 청송에서는 "사진 찍으러 왔지. 3일째 불타고 있다"는 핀잔이 들려왔다. 그러자 27일부터 진보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 산불 피해 기부 취소 인증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 대표의 봉변 이후 표출된 '기부 취소 행렬'이다. "평생 저 동네에는 기부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날 선 표현들이 붙었다.

기부에는 마땅히 '인도적 지원'이라는 표현이 붙는다. 이념·인종과 무관하게 사람부터 살리자는 것이다. 기부자들도 겸허한 마음으로 나선다. 그래서 진보 성향 일각에서 보인, 응당한 예의를 갖추라는 요구는 기부의 자세라 보기 어렵다. 수혜자의 자존심을 짓밟는 마음 씀씀이가 '기부'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전달될 리 없다. 심정적 괴리감만 공고해진다.

평생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고 공허한 눈빛으로 앉아 있는 이재민들을 봤다면 이럴 수는 없다. 덧붙이자면 이 대표가 안동체육관을 찾은 그날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일찌감치 배식 봉사 등을 하고 있었고 이후 며칠을 더 머무는 중이다. 이런 진심을 현장에서 본 주민들은 안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