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제는 삶의 희망 찾아나서는 복구의 시간"

입력 2025-03-30 14:30:15 수정 2025-03-30 14:42:23

안동실내체육관,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과 새롭게 옮겨온 사람들 희비
안동시, 이재민 거주시설 일원화·인문정신연수원 선진시설 제공 노력
권기창 시장, "시련 딛고 평온한 일상까지 신속·체계적 복구 역량 집중"

지난 28일 오후 5시, 산림청은 지난 22일 경북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의 주불 진화를 완료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밤새 숨어있던 잔불이 다시 발화되면서 29일 새벽 소방당국이 헬기를 동원해 진화에 나서고 중앙고속도 남안동IC~서안동IC 양방향을 전면 차단하는 등 산불 재발화에 대한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이날 8시50분 주불 진화가 완료되고, 차단됐던 고속도로 통행이 재개되면서 안동지역 산불은 24일 오후 4시30분 길안면 현하리 확산 이후 112시간만에 완전 진화됐다.

안동지역에는 주택 952개소, 창고 227개소, 기타 93개소의 시설물이 완전 불에 타 사라지고, 4천977명이 불길을 피해 대피했으며, 2천여명이 갈 곳을 잃은 이재민이 됐다.

권 시장은 "이번 산불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으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이 아픔을 가슴 깊이 새기고 앞으로 더 철저한 재난 대비와 신속한 대응 체계를 마련하겠다"며 "이번 시련을 딛고 평온한 일상으로 나아갈 때까지, 신속하고 체계적인 복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불 진화가 완료되면서 안동 실내체육관 이재민 시설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과 다른 대피시설에서 옮겨 온 이재민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엄재진 기자
산불 진화가 완료되면서 안동 실내체육관 이재민 시설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과 다른 대피시설에서 옮겨 온 이재민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엄재진 기자

◆본격 피해 조사, 이재민 임시주거시설 확보

안동시는 산불 진화가 완료되면서 곧바로 피해 조사와 발빠른 복구에 나섰다. 우선 산불이 지나간 마을에서 집과 시설물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읍면동 공무원들이 직접 조사에 나선다.

다음달 3일까지 피해 조사 등록을 완료하고, 가장 시급한 임시거주 주택을 마련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학교와 체육관 등에 흩어져 있는 이재민 거주시설을 안동체육관과 용상다목적체육관 등으로 일원화시키고, 장기간 대피 생활을 해야하는 이재민들에게 선진시설을 제공하기 위해 한국국학진흥원 인문정신연수원과 이용 계약을 맺었다.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주택이 전소되는 등의 피해를 입은 이재민이 대피소를 떠나 지낼 수 있는 거주용 조립식 주택을 제공할 계획이지만, 입주까지 한 달 이상이 걸려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임시주거시설 제공을 결정한 것.

인문정신연수원은 수용인원 250명 규모의 쾌적한 호텔형 숙박시설과 편리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독립된 공간도 확보된 곳이다. 지난 3월 29일부터 82명이 이주한다.

또, 마을 주민과 함께 지내길 희망하는 이재민을 위해 경로당과 마을회관을 임시주거시설 지정을 검토, 이재민들의 이동 현황을 살펴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생필품을 제공한다.

특히, 안동시는 영남권트라우마센터·광역(도)와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대한적십자사와 공동으로 '재난통합심리지원단'을 운영해 재난지역 대피소를 찾아 ▷전문요원 대면 상담 ▷정신건강서비스 안내 ▷심리지원 물품 제공 ▷고위험군 의료기관 연계 등 심리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번 피해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불안장애 등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가 나타날 수 있어, 1단계 심리응급처치를 실시하고 단계적으로 심층 치료를 진행할 수 있도록 예술 치유 등의 가족 심리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산불 진화가 완료되면서 안동 실내체육관 이재민 시설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과 다른 대피시설에서 옮겨 온 이재민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엄재진 기자
산불 진화가 완료되면서 안동 실내체육관 이재민 시설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과 다른 대피시설에서 옮겨 온 이재민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엄재진 기자

◆안동실내체육관, '갈 곳 없는 이재민, 조금씩 안정 찾아'

산불 진화가 완료된 29일, 이재민 대피 시설인 안동실내체육관에는 주말을 맞아 부모님을 만나려 찾은 가족들로 붐볐다.

쉘터(텐트)마다 멀리선 달려 온 자식 등 친인척들에게 포탄처럼 날아든 불덩이를 피해 빈몸으로 집을 빠져 나와야 했던 순간들을 이야기 하면서 서로 손잡고 눈물을 흘리기도, 안타까운 한숨을 짓기도 했다.

이 곳에는 이재민들의 생활불편과 건강을 돌보기 위해 적십자봉사회를 비롯해 안동시가족지원센터, 경북한의사협회봉사회, 안동시보건소 등 기관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쉘터를 돌며 내부를 살피기도 했다.

진료 부스와 심리상담 부스에서는 저마다의 사연을 하소연처럼 쏟아내는 이재민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사연처럼 들어주고, 공감하면서 함께 슬픔을 이겨내는 모습들이 머지않아 희망이 찾아 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도록 했다.

일직면 국곡리에서 평생을 살아 온 90대 노부부는 "살던 집도, 농사 창고도 모두 쑥대밭이 됐다. 언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곁에서 듣고 있던 할머니는 "전동차도 다 탔다. 잘 걷지도 못하는데도 불을 피해 겨우 빠져 나왔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주말을 맞아 부산에서 올라온 60대 딸은 "두 분을 서울과 부산에 살고 있는 자식들이 모시고 가려 했지만, 이재민의 불편한 생활이지만 이웃의 어르신들과 함께 있고 싶다 하신다"며 "어떻게 이런일이 닥쳤는지 화도 나고, 불안하고 걱정되지만 몸 불편보다 맘이라도 편하시길 바랄 뿐"이라 울먹거렸다.

한 마을이 모두 불타버린 길안면 구수리에서 사과 농사를 짓던 80대 할아버지는 주말을 맞아 온 아들과 함께 마을을 찾았다가 한 동안 땅바닥에 앉아 일어나질 못했다고 말한다.

지붕과 벽체가 모두 무너져 내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집을 보면서 '꿈인지 생시인지' 아득하기만 했었다고 전한다. 새까맣게 허물어진 삶의 터전을 눈으로 보고 온 후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뒷산 조상님들의 묘소도 모두 탔을게 뻔하다. 이제 자식들이 휴가철이며, 명절에 고향을 오면 어디서 가족의 정을 나눌 수 있을지 막막하다. 바깥 생활을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고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특히, 산불 진화가 마무리 되면서 안동실내체육관은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다른 대피시설에서 이동해 온 이재민 등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들이었다.

당초 이 곳에는 500여명의 이재민들이 대피해 생활했다. 30일을 기준으로 280여명으로 줄었다. 학교 체육관에서 대피해 있던 일부 이재민들이 새로 이동해왔다.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이재민의 삶을 살아야 할 주민들로 채워졌다.

4개 자연부락 온 마을이 불에 타버린 남선면 도로리 주민 20여명도 서부초등학교에서 29일 안동실내체육관으로 옮겨 왔다. 고추며 참깨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던 갈라산 자락 아래 평온했던 마을이 한 순간 처참한 마을로 변해 버렸다.

이 마을 이진호 이장은 "모든 주택이 타 버렸다. 지금은 농사를 지으려해도 농기계가 모두 불에 타 엄두를 못내고 있다"며 "하지만, 어르신들이 농사를 시잗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씀들이 많아 방법을 찾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이날 확연히 떨어진 기온으로 날씨가 제법 차가워졌다. 바람도 산불이 기승을 부릴때와 달리 한기를 느끼게 하는 날이었다. 때마침 적십자 봉사자들은 쉘터마다 두툼한 담요를 나눠주기에 분주했다.

다음주부터 등교를 가야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한 신발과 옷가지들이 도착해 철모르는 아이들은 마냥 깔깔거리며 신나게 떠든다. 비록 삶의 터전을 잃고 이재민 신세가 됐지만, 이 곳에서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으로 조금씩 안정되고 있다.

산불 진화가 완료되면서 안동 실내체육관 이재민 시설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과 다른 대피시설에서 옮겨 온 이재민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엄재진 기자
산불 진화가 완료되면서 안동 실내체육관 이재민 시설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과 다른 대피시설에서 옮겨 온 이재민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엄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