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성당 온 공지영 작가 "진보·보수보다 상식·비상식이 더 중요"

입력 2025-03-30 14:03:51 수정 2025-03-30 18:00:56

"586세대, 너무 많은 것 가졌고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고 생각"

소설가 공지영 작가는 지난 27일 천주교 대구대교구 수성성당 초청으로, 사순특강
소설가 공지영 작가는 지난 27일 천주교 대구대교구 수성성당 초청으로, 사순특강 '기도하는 하루'를 주제로 강연했다. 수성성당 제공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공지영 작가는 지난 27일 천주교 대구대교구 수성성당 초청으로, 사순특강 '기도하는 하루'를 주제로 강연했다.

사순절은 기독교의 대표적인 절기로 부활절 전 40일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며 신앙생활에 집중하는 기간이다. 공지영 작가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도가니' 등을 펴낸 한국 대표 소설가다.

일주일 전 집안을 가꾸다가 부상을 당해 선글라스를 꼈다는 말로 첫 인사말을 건넨 공 작가는 이날 '순종'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루치아, 프란체스카, 파티마 등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하느님과 성모에게 순종하며 봉헌을 한 성녀들의 이야기를 전한 공 작가는 "그 성녀처럼 매일 매일 그 밧줄과 같은 고통이 찾아온다면 봉헌을 하면 된다. 기적은 멀리있지 않다"고 말했다.

작가는 자신의 삶이 힘들었던 2003년 집에 불까지 났던 에피소드도 전했다. 작가는 "불에 타 죽을 뻔한 것을 막아주셨다. 그 전까지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이런 불행을 내게 주시냐'며 원망만 했는데 그 일을 계기로 '그동안 안 막아 주신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런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소설가 공지영 작가는 지난 27일 천주교 대구대교구 수성성당 초청으로, 사순특강
소설가 공지영 작가는 지난 27일 천주교 대구대교구 수성성당 초청으로, 사순특강 '기도하는 하루'를 주제로 강연했다. 수성성당 제공

공 작가는 7년 전부터 섬진강이 보이는 곳에 터를 잡고 집을 지어 살고 있다는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그녀는 "사랑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도심에 있을 때는 혼자 있으면 있을수록 마음이 외로워졌는데 지금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고 했다.

이어 "낙원을 잃어버린 과거의 나는 조금이라도 그 결핍을 채우려고 애쓰고 붕떠서 살았다. 항상 뭔가를 갈구했는데 사람은 그걸 채워주지 못했고, 내게 조금 남은 것마저 가져갔다"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자연을 보면 하느님의 모상이 그대로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채워진다"고 덧붙였다.

"후배 작가인 한강은 상을 타서 뉴스에 나오는데 나는 최근까지도 '검찰 송치' 같은 이슈로 뉴스에 나온다"고 자조섞인 농담을 건넨 공 작가는 진보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놨다.

그녀는 "단 한번도 진보의 가치를 잃은 적 없다. 하지만 AI시대인 지금은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고 상식과 비상식, 생명과 반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봄이 오면 겨울을 나게 한 패딩을 벗어야 한다. 매일 매일 새롭게 아침을 열어야 한다. 어제와 오늘의 날씨는 다르다. 봄이 오면 겨울을 나게 한 패딩을 벗듯이 오늘은 오늘의 기온 대로 옷을 입는 것이 바로 생명"이라고 말을 이었다.

또 "산에 있으면 외롭지 않지만 이런(정치적) 생각을 하면 외로워진다. 그렇지만 '586세대'라고 하는 우리 세대는 지금 너무 많이 가졌고, 기회의 사다리를 많이 차버리는 것 같다"며 "내가 진실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을 택하는 게 맞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