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대피소를 모두 떠날 때까지 끼니 책임질게요"

입력 2025-03-30 17:14:13

의성체육관 일시대피소 급식 봉사자…이영희 후죽1리새마을부녀회장
생업 접고 9일째 급식 봉사…엄마 도우러 온 아들도 함께 봉사
급박한 상황에 언성 높여 봉사자들에게 '죄송'…"끝까지 최선 다할 것"

의성군 의성체육관 일시대피소에서 급식 봉사를 하고 있는 이영희 후죽1리새마을부녀회장은
의성군 의성체육관 일시대피소에서 급식 봉사를 하고 있는 이영희 후죽1리새마을부녀회장은 "대피소를 모두 떠날 때까지 급식 봉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성현 기자.

지난 29일 오후 의성군 의성체육관 일시대피소. 이영희(66) 의성군 후죽1리새마을부녀회장의 목소리는 꽉 잠겨 있었다.

바람이 몰아치는 야외에서 끊임없이 뜨고 내리는 진화 헬기 소음을 이겨가며, 자원봉사자 수십여명을 움직여 식사와 도시락을 준비해온 탓이다.

이 씨는 지난 22일부터 이 곳에서 대피소 주민들과 현장 요원들의 끼니를 책임지고 있다.

산불이 의성군을 덮쳤던 그날 저녁, 우리음식연구회원이자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이 씨는 열 일을 제쳐두고 이 곳으로 달려왔다. 의성산수유마을 꽃맞이행사장에 납품할 단체 도시락 주문도 취소한 채였다.

"가게 건너편까지 밀려온 불길을 막느라 정신이 없는데 일시 대피소로 급식 봉사를 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도시락 납품 계약도 취소하고 대피소로 달려왔죠."

하루면 정리될 줄 알았던 산불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없었다. 밥차는 지원이 되는데 탑승자가 부족했다. 하루만, 하루만 더 하다가 9일째 밥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경제적인 손실도 크다. 연간 매출 3억원을 올리는 이 씨의 가게 문은 그날 이후 그대로 닫혀 있다. 밥솥 뚜껑 역시 단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

이 씨의 하루는 오전 4시 30분에 시작된다. 아침, 점심, 저녁조로 나뉘어 매번 다른 5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들어오고, 이 씨는 모든 급식 과정 전반을 진두지휘한다.

산불의 기세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끼니마다 1천명 분의 식사를 해냈다. 요양병원 거주자들이 먹을 유동식 100인분과 일반식 300~400인분, 현장 출동 대원들의 도시락 300~400인분까지 책임졌다. 여기에 면 단위 대피소에 보낼 식사까지 맡았다.

나흘이 지나자 체력적인 한계에 부닥쳤다. 이 씨는 만성 기관지 천식을 앓고 있다. 매캐한 연기가 지독한 현장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뛰어다니는 상황을 버텨내기 힘들었다. 건강을 염려한 가족들도 강하게 만류했다.

"지난 25일은 병원 정기 검진을 받는 날이었고, 다음날에는 서울에서 유료 컨설팅 강의를 받기로 예정돼 있었어요. 인수인계를 하고 병원에 왔는데, 전화가 빗발치더군요."

결국 그는 일시 대피소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육아휴직 중이던 아들도 돕겠다고 나섰다가 그대로 급식 현장에 눌러 앉았다.

다만 급박한 현장 상황 속에서 언성이 높아지거나 거칠어진 점은 미안한 감정으로 남아 있다.

이 씨는 "손발이 잘 맞지 않는 상황에 큰 소리를 내거나 본의 아니게 욕을 할 때도 있었다"면서 "봉사자들의 기분을 불편하게 했다면 정말 죄송하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다"고 거듭 사과했다.

이어 "대피소에 주민들이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급식 봉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