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그저 열심히 살았는데…50년 추억이 잿더미로' 대피소 못 떠나는 주민 사연

입력 2025-03-30 15:14:15

"평생 기억 담긴 사진·작품 모두 사라져…원통"
"인생을 잘못 살았을까…왜 내게 이런 일이" 눈물만 '그렁'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25일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에 강풍에 날아온 산불 불씨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있다. 연합뉴스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25일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에 강풍에 날아온 산불 불씨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있다. 연합뉴스
의성체육관 주민대피소에서 만난 김왜선(77) 씨는 이번 산불로 집과 가게 등이 모두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다. 장성현 기자.
의성체육관 주민대피소에서 만난 김왜선(77) 씨는 이번 산불로 집과 가게 등이 모두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다. 장성현 기자.

30일 오후 의성군 거점 대피소인 의성체육관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일부 지역에서 부분 재발화가 일어나긴 했지만, 주불 진화 전까지 감돌았던 긴장감은 사라진 뒤였다.

일시 대피소에 남은 주민들도 대부분 짐을 쌌다. 의성군에 따르면 이 곳에 남은 주민은 30일 오전 기준 50명이 전부다. 산불의 기세가 최고조였던 지난 26일에는 이 곳에 333명이 머물기도 했다.

남은 이들은 대부분 집이 완전히 불에 타 돌아갈 곳이 없거나 살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 이들이다.

지난 25일 단촌면 하화리에서 급하게 몸을 피한 김왜선(77) 씨 역시 대피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길이 단촌면 일대를 집어 삼키던 지난 26일, 김 씨는 가게와 집을 고스란히 잃었다. 집이 있던 자리에 남은 건 기둥과 잔해, 잿더미 뿐이다.

"불길이 보이긴 했는데 길가에 가게 있는데다 주변에 소방차도 4대나 있었고, 소화전도 가까이 있어서 걱정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모두 타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죠."

불이 난 집터는 50년 넘게 살았던 터전이었다. 시조부모를 모시고 4대가 함께 지내며 억척스럽게 살았다. 세 아이 학비를 마련하려 집 앞에 가게를 지어 동네슈퍼를 했고, 농번기에는 논밭으로 점심 배달도 했다.

김 씨는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 100~150인분을 밥을 지어 날랐어요. 새참으로 빵과 우유를 300개씩 팔았죠. 벼농사도 따로 짓고 참 열심히 살았어요."

자녀들이 장성한 후에는 '베풀며 살자'는 마음으로 봉사 활동도 열심이었다. 오랫동안 봉사단체 회장을 지냈고, 복지시설에서 정기적으로 청소나 무료 급식 봉사도 해왔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은 그는 삶 자체를 허탈하게 느끼고 있었다. "잠 잘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러워요. 자식들은 함께 서울로 가자는 데, 막상 내 집이 불타고 없어지니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봐 따라가기 싫어요."

무엇보다 김 씨의 마음을 가장 무겁고 아프게 하는 건 그동안 모아둔 삶의 흔적이 모두 사라졌다는 점이다.

자녀들이 어린 시절부터 틈틈이 찍은 사진과 가족 여행 사진들, 서예에 능통했던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남긴 작품과 생전 모습들, 시댁 어른들의 얼굴 등 옛 기억을 되살려줄 모든 것들이 한 줌 재로 사라진 탓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 사진과 물건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게 너무 원통해요." 먼 곳을 바라보는 김 씨의 눈에 가득 눈물이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