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문자 폭탄' 5분도 안 돼 대피소 변경 허둥지둥

입력 2025-03-26 17:35:27 수정 2025-03-26 20:11:44

경북 북동부권 대처 미숙, 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
고령자 비중 절대적 높은데 스마트폰 발송 효과 미지수
중복 전송 주민 혼란 부추겨
진출입 어려운 도로도 한몫 자가 차량 타고 탈출 불가능

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마을에서 주민이 불에 탄 주택에서 짐을 옮기고 있다. 지난 22일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인근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십수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마을에서 주민이 불에 탄 주택에서 짐을 옮기고 있다. 지난 22일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인근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십수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 22일 의성군 안평면에서 시작돼 엿새째 계속되고 있는 '괴물 산불'로 경북 북동부권에서만 최소 18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당국의 대처 미숙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체계 없는 혼란스러운 재난문자와 '뒷북 대응' 등으로 역대급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망자 대부분이 고령의 어르신들로 대피 과정에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고, 진출입이 까다로운 도로 여건도 탈출을 어렵게 했다.

◆혼란·뒷북 행정이 화 키웠다

26일 오전 9시 기준 경북도가 집계한 산불 사망자는 영덕 7명, 영양 6명, 청송 3명, 안동 2명 등 모두 18명이다. 현재 경찰에 산불 관련 사망자 신고 접수 등 추이에 따라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사망자들은 전날 밤과 이날 오전 중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이 당시는 의성 안평면 산불이 인접한 안동·청송을 넘어 직선거리로 50㎞ 이상 떨어진 영양·영덕 등으로 옮겨붙은 시점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발생한 사망자들 대부분은 60대 이상 어르신들로 대피 과정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영양에선 60대 일가족 3명이 차량을 이용해 대피하던 중 불길을 만나 '소사(燒死)' 상태로 발견됐고, 안동·청송 등에선 주택 실내나 마당 등에서 연기에 질식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망자들이 여럿 나왔다.

이런 가운데 인접 지역에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번져 오는 상황에서도 해당 지자체들이 긴급재난문자를 남발하고, 사전에 적극적으로 주민들을 안전 지역으로 대피시키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날 오후 3시 30분부터 총 13차례 안전안내,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한 안동시의 경우에는 10분의 차이를 두고 한꺼번에 대피 명령을 발송하는 등 산불이 인접한 상황에서 체계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 또 일부 안내 문자의 경우에는 대피 장소 등을 정정하는 혼란을 겪기도 했다.

경북 의성군 안평면 산불이 덮친 청송군 파천면 목계리에서 26일 청송목계교회 이상춘 목사가 전소된 교회와 집기 등을 살펴보고 있다. 전종훈기자.
경북 의성군 안평면 산불이 덮친 청송군 파천면 목계리에서 26일 청송목계교회 이상춘 목사가 전소된 교회와 집기 등을 살펴보고 있다. 전종훈기자.

비슷한 시간 영양군은 총 4차례, 의성군도 2차례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인접한 기지국 주파수 등에 따라 발송되는 긴급재난, 안전안내 문자 특성을 고려하면 이 같은 중복 전송 또한 주민들의 혼란을 부추긴 것으로 풀이된다.

영덕에서는 이날 새벽 주민 104명이 산불로 인해 대피하던 중 항구와 방파제에 고립됐다가 울진해경에 구조되기도 했다. 대피 장소를 안내한 지 5분이 지나지 않아 장소를 변경하는 등 허둥지둥하는 모습도 보였다.

◆고령자들 열악한 도로 상황에 대처 어려워

고령자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북부권 특성상 스마트폰 발송에 의존하는 이 같은 문자들의 효과 또한 미지수다. 안동에서 발생한 사망자 중 대부분은 길안면과 함께 가장 먼저 의성 산불이 번진 임하면에서 나왔고, 이들은 모두 70, 80대 이상 고령자다.

열악한 도로 상황도 피해를 부추겼다. 고령의 주민들이 안전 문자 확인 후 자가 차량을 이용해 대피하더라도 강풍을 타고 날아오는 불씨를 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산불 여파로 서산영덕고속도로가 통제된 가운데, 영양·청송을 지나는 국도·지방도는 대부분 폭이 좁은 왕복 2차로에 선형도 불량하다. 불씨가 날리는 상황에선 운행이 더욱 쉽지 않다. 이 같은 이유로 청송·영양에선 대피 중에 숨진 사망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26일 새벽 한때 일부 시·군에서 산불 여파로 통신이 두절되면서 정확한 피해 사실 집계가 이뤄지지 못했다. 현재 각 시·군을 통해 인명 피해 현황을 집계 중"이라면서 "강풍을 타고 의성 산불이 비화하면서 인근 지자체들이 산불의 정확한 도달 시점을 예측하지 못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인명 피해를 줄이려고 최선을 다했으나 사망자가 발생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안동체육관. 김지수 기자
안동체육관. 김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