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황영은] 살아보지 않은 삶

입력 2025-03-20 11:28:18 수정 2025-03-20 18:34:48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1880년대 프랑스 하급 공무원의 아내였던 마틸드는 늘 화려한 삶을 동경하며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비관했다. 어느 날, 남편이 들고 온 무도회 초대장을 받고서 마틸드는 고민에 빠졌다. 입고 갈 드레스와 장신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친구 포레스트에게 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렸고, 파티에서 주목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돌아오던 길, 목걸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너무도 당황한 마틸드 부부는 빚을 내어 똑같은 다이아몬드를 사서 친구에게 돌려줬고, 돈을 갚기 위해 갖은 노동을 하며 궁핍하게 생활했다. 10년 후, 드디어 그 빚을 청산했다. 거리에서 만난 포레스트에게 그간의 일을 사실대로 털어놓았더니 충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 가엾어라, 마틸드! 내 것은 가짜였어. 기껏해야 5백프랑밖에 되지 않는……."

프랑스 사실주의 대표 작가 '기 드 모파상'의 단편소설 '목걸이'는 학생들과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는 작품이다. 파티에 초대됐는데 마땅한 옷이 없다면 참석할 것인가, 남자가 화장이나 성형 수술을 하는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틸드가 처한 상황을 사회적 문제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본성으로 치부해야 할 영역인가, 하는 등등의. 답도 없는 치열한 토론을 재미있게 관람하도록 만들어준 작품에 매번 흥미를 느끼곤 했다.

토론 수업에서 마틸드를 만날 때마다 현대인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SNS가 일상의 거대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으면서 현대인은 타인의 삶을 의식하고 또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돼 버렸다. 물론 바쁜 일상에서 정보를 공유하며 위로와 공감을 받는 순기능도 있겠지만 개인정보의 유출, 사회적 비교 때문에 크고 작은 범죄에 노출되는 부작용도 적잖이 발생한다.

자기 삶의 주체는 결국 자신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처럼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의 적성과 성향, 또 능력대로 기준을 맞추어 살아가는 삶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틸드는 허영심 때문에 남편까지 끌어들여 10년 동안 헐벗은 생활을 했다. 만약 처음부터 사실대로 터놓았다면 완전히 다른 모습의 10년을 살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자존심에 그러지 못했다. 결국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진 꼴이 돼버렸다.

혹시 2025년의 우리도 150여 년 전의 마틸드처럼 살아보지 않은 타인의 삶에 지나치게 관심을 두고 은근히 그 기준에 자신의 욕망을 맞추어 살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SNS 속에서 조명과 각도와 설정으로 '성공리'에 건져 올려진 한 장의 사진은 과연 타인의 리얼한 삶일까. 살아보지 않았으므로 기대하고 동경하는 심리는 이해할 수 있으나 그럴듯한 외양만을 쫓다 보면 정작 중요한 진실은 놓치고 허우적대다가 아까운 시간만 허비할 것이다.

'나'의 가치는 오롯이 나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그들의 삶이 내 눈에 휘황찬란하게 보였다면, 내가 매 순간 초라해 마지않았던 나의 삶이 누군가의 눈에는 올곧거나 평온한 길일 수도 있다. 그러니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휘청거리듯 타인의 삶에 기웃거리는 인생 말고, 스스로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갈 것인지 명확하게 욕망해야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