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최경철] 尹대통령에게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입력 2025-03-16 17:48:29 수정 2025-03-16 17:56:21

최경철 편집부국장 겸 동부지역취재본부장
최경철 편집부국장 겸 동부지역취재본부장

지난 12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을 만났더니 여러 사연을 들려주었다. 직전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후보 단일화를 이룬 뒤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그였기에 윤 대통령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인수위 때의 윤 대통령은 전혀 독선적이지 않았다. 친윤 그룹 사람들도 내게 아무런 말도 못할 만큼 갈등도 없었다." 하지만 이내 상황은 급변했다고 그는 기억했다. 정권 출범 후 숫자를 정해 놓고 밀어붙이는 일방적 정책 기조가 쏟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22년 7월,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추진 방침을 발표했다가 역풍을 맞고 정책을 철회했는가 하면, 이듬해에도 연구개발(R&D) 예산 축소로 인해 난리가 났다. '2천 명' 의대 증원 역시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고 정부가 의료계에 백기 투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안 의원은 "이런 부분에 대해 조언을 못 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털어놨다. 숫자부터 내미는 정책은 무조건 실패할 가능성이 큰데 윤석열 정부는 이 길로 직진했다는 것이다. 의료 개혁만 해도 지역 및 필수의료의 열악함, 의사과학자 양성 필요성 등 명분을 축적한 뒤 정책 우군을 다수 확보했다면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동의와 지지 확보, 이를 바탕으로 한 신뢰 조성 뒤의 정책 추진이 상식인데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게 안 의원의 얘기였다. 엎질러진 물을 되담을 수 없다. 안 의원 얘기는 이치에 맞지만 넋두리일 뿐이다. 그러나 만약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彈劾訴追)가 각하되거나 기각돼 대통령실로 돌아온다면 윤 대통령은 안 의원의 회고를 비롯해 지난날을 반드시 되짚어봐야 한다. 그러고는 윤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헌법재판소 최후 변론을 통해 밝혔던 개헌 추진에 이를 꼭 투영해야 한다.

나이가 쉰 중반에 이른 기자를 비롯해 국민의 절대다수가 1987년 9차 개정 헌법 국민투표에 참여한 바 없을 정도로 현행 헌법은 낡은 옷이 됐다. 지금 헌법은 야당의 다수결(多數決) 만능주의도 예측 못했다. 마침내 국회에서 다수 폭정은 현실화했고 정치적 반대자를 노린 탄핵 난사와 입법 폭주가 벌어졌다. 나라가 끝장날지 모른다는 공포감마저 만들어졌다. 단원제 국회를 양원제로 해 국회 내에서의 다수 독주를 막고, 입법·사법·행정 3권분립 수평적 분권 체제에서 지방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주는 수직적 분권으로 가는 길을 여는 등 견제와 균형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나라로의 국가 체계 재설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는 차고 넘친다.

윤 대통령은 최후 변론에서 "잔여 임기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면서 임기 단축을 선언했다. 개헌 추진에 있어서 통치자의 임기 단축만큼 강한 무기는 없다. 손에 쥔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각오를 내놓은 윤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손의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개헌을 반대한다면 취임하자마자 개헌안을 내놨던 문재인 전 대통령을 몇 번이라도 찾아가 진보 진영 내부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민주당이 보여준 것처럼 다수를 내세워 멋대로 자유를 누린다면 민주주의의 실패는 명백해진다. 자유를 누리면서도 공동체(共同體)주의와 시민적 덕성(德性)이 살아 숨 쉬는 공화주의(共和主義)적 이상도 실현시킬 수 있는 새 나라의 기초를 닦아야 한다. 개인의 자율성과 공공선이 조화되는 민주공화국, 그 희망의 나라로 가는 승차권을 끊어 놓고 윤 대통령은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