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태 경제부 기자
2년 전 배터리 기업들의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국내 증시가 달아올랐다. 당시 시가총액 상위권 순위가 뒤바뀌며 반도체를 잇는 새로운 주력 산업의 등장에 기대가 부풀었다.
12일 시가총액 상위권을 보면 10위권 내 진입한 배터리 기업은 이제 LG에너지솔루션(3위)이 유일하다. 주가 역시 고점을 찍었던 시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동반 상승했던 2차전지 소재사들도 대부분 순위권에서 밀려난 상태다.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승했던 주가가 제자리를 찾았다는 비관적인 해석이 지배적이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로 시장 전망이 부정적으로 돌아서면서 투자 심리도 차갑게 식었다.
반면 배터리 시장은 '이제 시작'이라는 긍적적인 시각도 공존한다. 에너지 전환의 필수 요소인 2차전지 기술의 주도권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유효하다. 실제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여전히 두 자릿수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전에 폭발적 성장세에 비해 다소 둔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분야를 살펴봐도 이 같은 성장률을 유지하는 산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탄소중립은 시대적 과제다. 목표로 나아가는 속도가 늦춰질 수 있지만 방향은 뚜렷하다. 인공지능(AI)이 촉발한 새로운 산업혁명 역시 고효율의 에너지를 요구한다. 배터리가 탑재된 기기는 산업 현장을 넘어 우리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도심항공교통(UAM)도 배터리가 없으면 가동이 불가능하다. 더 멀리 더 오래 가는 배터리는 전기차 전환을 앞당길 것이다.
지난 7일 폐막한 국내 최대 2차전지 박람회 '인터배터리 2025'는 그 잠재력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침체기를 맞았다는 평가와 달리 올해 행사는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고 참관객도 가장 많았다. 빽빽하게 늘어선 부스마다 인파가 붐볐다. 해외 취재진도 다수 현장을 찾아 K-배터리의 위상을 새삼 체감할 수 있었다.
배터리 기업들의 비전을 엿볼 수 있는 콘퍼런스에도 많은 참관객이 몰렸다. 전고체 배터리를 비롯한 차세대 배터리 상용화 시점에 대한 관심이 높다. 기존 기술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제품의 출시 여부에 이목이 쏠린 것이다. 2차전지 소재사들도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력을 완성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와 달리 중국 기업의 참가도 부쩍 늘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중 양국의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국 업체들이 한국에 지사를 설치하는 등 국내 시장 진출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모기업이었던 LG화학 맞은편에 자리 잡은 BYD 부스를 지키는 임직원들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인터배터리의 주인공은 역시 K-배터리였다. 장기간 쌓은 기술력에 의존하지 않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주력한 결과가 하나둘 성과를 보이기 시작하는 단계다. 캐즘 이후 다가올 더 큰 도약을 준비하는 CEO들의 발언도 화제가 됐다. 업황이 좋지 않음에도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지 않겠다는 공통된 의견에는 결연함도 묻어났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잠재력은 충분하다. 전력을 생산하는 것보다 이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기술의 진입 장벽이 더 높다. 후발 주자로 뒤따라가기 바빴던 다른 산업과 달리 2차전지는 우리가 선점한 기술로 전후방 산업 생태계도 탄탄하다. 비록 지금은 비관론이 우세하지만, 머지않은 미래 한국의 시가총액 지형도가 바뀌는 순간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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