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소리 나는 아파트 고급 옵션…바뀐 조건에 소비자 '멘붕'

입력 2025-03-11 10:34:48 수정 2025-03-11 18:36:46

소비자 피해 속출해도 제도적 대책은 미흡

고급화 옵션을 강조한 아파트 분양 계약으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지만 제도적 대책이 미흡해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사진은 옵션 계약으로 소비자와 분쟁을 겪고 있는 대구 한 아파트 단지 견본주택 전경. 독자 제공
고급화 옵션을 강조한 아파트 분양 계약으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지만 제도적 대책이 미흡해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사진은 옵션 계약으로 소비자와 분쟁을 겪고 있는 대구 한 아파트 단지 견본주택 전경. 독자 제공

'억' 소리 나는 아파트 옵션 계약으로 인한 각종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최근 건설사들이 타 브랜드와의 차별화를 위해 다양한 옵션 상품을 선보이면서 이와 관련된 소비자 피해도 늘고 있지만 제도적인 해법이 마련되지 않아 소비자가 개별적으로 법적 다툼을 벌여야 하는 현실에 내몰리고 있다.

가족들을 위해 더 넓은 보금자리를 찾고 있던 A(51) 씨는 지난 2022년 2월 14일 대구 달서구 본동에 있는 최고 49층, 606가구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 시행사와 전용면적 105㎡ 아파트에 대한 분양 계약을 맺었다.

A씨에 따르면 분양 계약 당시 시행사 측은 1억5천500만원에 달하는 고급화 옵션 계약을 반드시 추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코니 확장비를 포함한 분양가 7억5천만원에 옵션 비용을 더할 경우 전체 계약금액은 9억원에 달했다. 고급화 옵션 계약에는 주방과 욕실, 마감과 수납을 고급화하는 내용이 담겼고 시행사는 '하이엔드 인테리어'라고 광고했다.

A씨는 "금액이 과다하다고 생각해서 옵션 계약을 추가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옵션을 계약하지 않으면 아파트 분양 계약을 할 수 없고 아파트 전체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말에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문제는 6개월 뒤 시행사가 고급화 옵션을 적용하지 않도록 분양 조건을 변경하면서 불거졌다. A씨 등 초기 계약자들이 옵션 계약을 철회해달라 거듭 요구했으나 시행사는 계약 해지가 불가능하다고 맞섰다. A씨는 "분양 계약 당시 고급화 옵션 계약을 강제했고 미분양 등으로 계약 조건이 변경됐음에도 초기 계약자만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지난해 12월 소비자보호원에 피해구제를 신청했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지난달에 사건이 분쟁조정위원회로 회부됐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소비자와 사업자 사이에 발생한 분쟁에 대한 조정요청 사건을 심의하는 준사법적인 기구를 말한다. 조정이 성립되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지니지만 당사자 일방이 이를 거부해 조정이 불성립된 경우 개별적으로 법원의 소송절차를 통해 해결할 수 밖에 없다.

지난 2016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아파트 옵션 상품에 관한 불공정 약관을 시정하겠다고 밝혔으나 현실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당시 많은 건설사가 계약 체결 이후나 특정 시점 이후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없도록 고객의 해제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자 공정위 자체적으로 실태조사를 거쳐 불공정 약관을 시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시행사 측은 계약자들에게 옵션 계약을 강제하지 않았고 사전에 자재 발주가 이미 이뤄진 상황이라 취소가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분양 조건을 추후에 변경한 이유에 대해서도 "외산 자재 발주가 어려워지는 바람에 해당 상품을 판매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일부러 분양 조건을 바꾼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시행사 관계자는 "오는 6월 입주를 앞두고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입주 시기가 다가오면 잔금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그때쯤 소비자분쟁조정절차 등을 거쳐 협의를 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