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음서제냐…" 2013년 이후 드러난 선관위 경력채용 비리만 878건

입력 2025-03-06 17:08:04 수정 2025-03-06 20:28:25

친분있는 직원, 면접관 배치…채용 공고도 없이 자녀 내정
"김세환·송봉섭 등 '아빠 찬스' 위법·편법 총동원 가족 회사"

송봉섭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 사무차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김대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자녀 채용 비리와 관련한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를 경청하며 무거운 표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봉섭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 사무차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김대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자녀 채용 비리와 관련한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를 경청하며 무거운 표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고위직 자녀로 채용과정에서 특혜를 받은 직원 10명에 대해 5일 직무배제 조치를 취한 가운데 이들 고위직 자녀들의 부정채용 과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채용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잡음을 줄이기 위해 '블라인드(정보가림) 면접' 등 공정경쟁 장치를 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직임용 전형에 '현대판 음서(蔭敍)제도'가 작동된 것과 관련해 선관위 대수술에 대한 촉구가 빗발치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달 27일 '선거관리위원회 채용 등 인력관리 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채용비리에 연루된 선관위 전·현직 직원 32명에 대해 선관위에 징계를 요구하거나 비위 내용을 통보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선관위 직원들은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가족 채용을 청탁한 사례가 빈번했다. 아울러 이들의 부탁을 받은 인사·채용 담당자들은 각종 위법·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직원 가족을 합격시켰다.

2013년 이후 시행된 경력경쟁채용(경채·291차례)을 전수조사한 결과 모든 회차에 걸쳐 총 878건의 규정위반이 드러났다.

특히 선거관리위원회 고위직들은 인사담당자에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자기 가족의 채용을 부탁했다. 김세환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장관급)은 2019년 아들이 인천 강화군선관위에 8급 공무원으로 채용되도록 부정하게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송봉섭 전 중앙선관위 사무차장(차관급)도 2018년 충북선관위 담당자에게 전화해 당시 충남 보령시청에서 근무 중이던 딸을 충북 단양군 선관위 경력직 공무원으로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선관위 인사(채용) 담당자들은 온갖 위법·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청탁자의 가족을 합격시켰다. 채용 공고 없이 선관위 직원 자녀를 내정하는가 하면 친분이 있는 내부 직원으로 시험위원을 구성하거나 면접 점수를 조작·변조하기도 했다. 이렇게 선관위가 오순도순 가족회사로 변질해 가는 사이 일반응시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고배를 마시며 울분을 삭였다.

앞서 국민권익위원회도 지난 2023년 선관위의 채용과정에 문제가 있다면서 고발장과 수사의뢰서를 검찰에 접수했다. 고발장 내용에 따르면 선관위는 ▷학사학위 취득 요건에 부합하지 않은 부적격자 합격처리 ▷평정표상 점수 수정 흔적이 있는 평정 결과 조작 의혹이 있는 합격처리 ▷담당 업무가 미기재된 경력증명서를 토대로 근무경력을 인정한 합격처리 ▷선거관리위원회 근무경력을 과다 인정한 합격처리 등의 채용비리를 저질렀다.

구체적으로 경력채용심사 과정에서는 노골적인 '아빠 찬스' 시도가 이어졌다. 김세환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의 자녀는 심사 당시 면접관이 모두 김 전 사무총장과 같은 지역에서 일 했던 동료였다.

인천시 선관위에서 근무한 간부의 자녀 A씨는 2011년 경력 채용 자기소개서에 '아버지가 선거 관련 공직에 계셔서 선관위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선거가 국회의원·대통령 선거 말고 다양하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며 부친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가족관계를 기반으로 경력채용이라는 수단을 통해 선관위에 입사하면 1년 이내 승진을 하는 공식이 선관위 부정채용 과정에서 드러났다"면서 "그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선관위가 이런 복마전에 휩싸였다는 사실 자체가 경악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음서제도=고려와 조선 시대에 있었던 고위 관리의 비속(卑屬) 친척 및 인척에게 과거시험을 생략하고 하급 관직을 주는 관리 임용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