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건설업계, 미수금·미분양·환경 규제 '삼중고'…생존 위한 위기 경영

입력 2025-03-02 14:57:04 수정 2025-03-02 20:07:10

건설사 운영 자금 막히고, 환경 규제에 공사비 상승
'노른자 땅' 영남중·고 후적지, 할인에 할인해도 세 차례 유찰
'PF 규제' 자금줄 꽉 막힌 업계…가격 더 떨어지기만 기다릴 듯

2일 대구 한 신축 아파트에 할인 분양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2일 대구 한 신축 아파트에 할인 분양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국내 1호 토목건축공사업 면허를 보유한 삼부토건이 10년 만에 다시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삼부토건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부채비율이 838.5%로, 2020년 이후 2023년까지 4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삼부토건 옛 건물 외벽에 붙은 로고 모습. 연합뉴스
국내 1호 토목건축공사업 면허를 보유한 삼부토건이 10년 만에 다시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삼부토건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부채비율이 838.5%로, 2020년 이후 2023년까지 4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삼부토건 옛 건물 외벽에 붙은 로고 모습. 연합뉴스

대구 한 건설사 대표 A씨는 최근 준공한 현장에서 전체 공사비의 30%에 달하는 잔금 수십억원을 못 받고 있다. 시행사 측은 자금 사정이 어렵다며 지급 시기를 수개월째 연기했다. A씨는 "공사를 하고 공사 대금을 못 받는 경우가 지역에 허다하다"며 "분위기가 정말 좋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상황이 점차 악화되면서 연쇄적인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A씨는 "자금 사정이 어려워서 금융사를 통해 회사 운영 자금을 빌리려고 해도 부동산, 건설업 쪽 대출은 완전히 막혀 있다"며 "단순 도급 공사를 수행한 회사는 채권 회수가 안 돼서, 자체 시행한 회사는 미분양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꽉 막힌 PF…거래 실종

전국적으로 건설업계의 4월 위기설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구 건설업계 역시 미수금, 미분양, 환경 규제 강화라는 삼중고에 직면했다. 전문가들은 건설업 침체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우며 건설사들이 위기 경영을 통해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2일 주택업계에 따르면 대구 주택 건설업계는 재건축, 재개발 붐이 일기 시작한 2018년부터 매년 50개 내외의 신규 착공 현장을 소화했다. 하지만 현재는 주택경기 침체로 인해 공동주택 착공이 급감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최상대 대구시회장은 "매년 전국에서 100개 이상의 현장을 착공해온 대기업도 지난해에는 10여개 현장밖에 착공하지 못했다고 한다"며 "현재 건설경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래전부터 부동산 시장의 관심을 받아온 토지 매각도 번번이 유찰되며 부동산 시장의 침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영남교육재단은 지난달 28일 영남중·고 후적지 매각에 관한 3회차 입찰을 진행한 결과 유찰됐다고 밝혔다. 영남교육재단은 지난달 21일 토지와 건물 등에 관한 매각을 공고했다. 입찰 마감 시한은 지난달 27일 오후 4시까지였고 최저입찰가격은 1·2차보다 10% 할인된 2천106억원으로 책정됐다.

영남교육재단은 1·2차 입찰이 유찰되자 대구시교육청과의 협의를 거처 최저입찰가격을 최대 20% 인하해서 매각 절차를 다시 진행하기로 했다. 영남교육재단은 3차보다 10% 더 할인된 가격으로 곧바로 4차 입찰을 진행할 계획이다.

달서구 상인동 학교 용지인 영남중·고 후적지는 대지면적 4만727㎡, 건물 2만7천705㎡로 구성됐다. 대구시교육청은 지난해 12월 학교법인 영남교육재단의 '영남중·고 학교위치변경계획'을 승인했다. 1990년 달서구 상인동에 터를 잡은 영남중·고는 2026년 달서구 월배지구로 이전할 예정이다.

지역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영남중·고 부지는 오래전부터 관심을 보인 디벨로퍼들이 많았지만 최근 PF가 완전히 잠기면서 자금을 끌어올 방법이 없어졌다"며 "관심을 보이던 디벨로퍼들도 지금보다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남중고 전경. 영남교육재단 제공
영남중고 전경. 영남교육재단 제공

◆분양가 끌어 올리는 환경 규제

가뜩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환경 규제까지 강화되면서 건설업계를 더욱 옥죄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오는 6월부터는 30가구 이상의 민간 아파트에도 제로에너지건축물(ZEB) 5등급 인증이 의무화된다.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제는 고단열, 고기밀을 통해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고,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는 건축물에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2017년부터 공공 건축물에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제를 도입한 정부는 6월부터는 민간 건축물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건설업계는 환경 규제 강화로 분양가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제로에너지건축물 5등급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고성능 창호, 단열재, 태양광 설비 등이 필수적이고 이에 따라 공사비가 급격히 증가할 우려가 있다. 분양가 상승세는 이미 소비자가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 3.3㎡당 평균 분양가는 2023년보다 14.61% 상승했다. 이를 전용면적 84㎡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6천600만원가량 오른 셈이다. 부동산R114는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준공 후 미분양이 10여년 만에 최대에 이르자 정부는 미분양 아파트 직접 매입 등 부동산 시장 회복 대책을 발표했다"며 "다만 매입 물량이 많지 않고 세제 감면 등의 혜택이 없어 효과가 발휘되기까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건설업계의 위기 속에 더욱 보수적인 경영이 확산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형 건설사들도 자금 확보와 비용 절감을 위해 사옥을 팔거나 본사를 옮기는 등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실제 시공능력 8위 롯데건설이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사옥 부지를 매각한다고 밝혔고 5위인 DL이앤씨도 서울 종로구 돈의문 D타워를 떠나 올해 연말 강서구 마곡지구로 본사를 이전할 계획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업은 등락이 있고 한번 방향성이 바뀌면 적어도 수년간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업황이 변하기를 기대하긴 어렵다"며 "불확실성이 커진 시기에 건설사들은 신규사업도 더 꼼꼼히 사업성을 판단해서 취사 선택해 수주하고 필요하다면 감원을 포함한 위기경영으로 방향을 전환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