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연구자
홍매, 백매 다투어 피어나는 매화의 계절! 흰 꽃잎의 백매와 붉은 꽃잎의 홍매를 함께 그린 신명연의 '홍백매도'를 골라보았다. 원래 매화그림은 수묵의 묵매로 대부분 그려져 왔고 꽃은 당연히 흰 꽃이었다. 그런데 조선에서 19세기에 먹이 아니라 채색 물감으로 붉은 매화를 그린 홍매도가 본격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이어서 흰 꽃과 붉은 꽃을 함께 그린 홍백매도가 나타났다. 묵매가 백매로 상대화되면서 매화도는 묵매도라는 틀이 순식간에 소용없게 되어 버린 사건이다.
묵매는 군자이고 홍매는 미인이다. 홍매도와 홍백매도는 매화를 한사(寒士)의 고결함으로 표상해온 매화도의 전통에서 홀연히 벗어났다. 홍매도는 붉은 꽃의 풍성하고 화려한 아름다움, 고목의 기굴한 역동성, 둥치와 가지가 어울린 조형적인 구성미를 예찬하는 매화도다. 홍매도, 홍백매도의 선두에 있는 화가가 우봉 조희룡(1789-1866)이다. 조희룡은 고정된 관념을 투사하던 매화도의 전통에서 홀연히 벗어났다. 그는 매화나무를 심미적 대상으로 자각하며 새롭게 바라보았고 그림의 본령인 시각적 조형성에 주목했다.
중국에서는 청나라 때 금농이 홍백매도를 본격적으로 그렸고 금농의 제자인 나빙(1733-1799)이 스승의 화법을 계승했다. 두 가지 색 매화를 함께 그린다고 해서 이색매화도(二色梅花圖), 쌍색매화도(雙色梅花圖)라고도 했다. 조선에서는 조희룡이 홍매와 백매를 처음 함께 그렸고, 그는 색이 다를 뿐 매화의 정신은 같다는 '홍백동심도(紅白同心圖)'라는 멋진 이름도 지었다.
그러나 신명연의 '홍백매도'는 조희룡의 조선 풍이 아니라 국경 너머 청나라 풍이다. 신명연이 아버지 신위를 따라 나빙을 비롯해 중국그림을 많이 감상했기 때문이다. 묵죽을 잘 그렸던 신위는 그림에 관심이 많아 나빙의 작품을 여러 차례 감상했고 그 사실을 시로 남겼다. 그래서 아들인 신명연의 매화도가 청나라 매화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신위는 1812년(순조 12) 사신으로 중국을 다녀왔고 이후에도 북경 문화계 인사들과 계속 교류해 소장품이 많았다. 나빙의 매화도가 조선에 알려지고 작품도 들어와 있었던 것은 사신단의 일행으로 북경에 갔던 박제가와 직접 만났기 때문이다. 1790년(정조 14)이었다. 나빙은 박제가에게 초상화와 매화도를 그려줬다.
신명연의 '홍백매도'는 사군자인 매화와 화훼인 매화의 절충이다. 옅은 먹으로 매화 가지를 차분하게 구성하고 백매를 위주로 하면서 홍매를 살짝 곁들였다. 신명연은 난초그림도 묵란이 아닌 채란(彩蘭)으로 그렸고 사군자와 산수를 결합하는 등 사군자의 변신, 또는 확장을 다양하게 보여주었다. 19세기 조선 미술계는 중국미술, 일본미술의 영향을 소화하던 국제화의 시기였다. 그래서 고답적인 사군자화에도 새바람이 불어 홍매도, 홍백매도가 나타난 것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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